무술과 거리

상고하기는 어렵겠지만 아마 우리가 무술이라고 부를 수 있는 기술들의 원래 모습은 꽤 멀리 떨어져 있는 적을 상대하는 기술이었을 것이다.

무기를 들고 서로 맞설 때 심리적으로 서로 가까이 붙어 있을 수가 없다. 사냥의 경우도 어느정도 거리를 두고 무기를 사용한다.

아마 용기있게 한걸음에 달려가서 큰 기술로 공격하는 것이 주된 공격 방법이었을 것이다.

큰 기술을 쓰기 위해서는 준비 자세가 중요하며, 한편으로는 상대의 자세를 보고 어느 부분이 약점인지 파악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또, 자신의 사정거리도 알아야 한다. 현재 남아있는 일본의 검술들이 이런 특성을 가지고 있다. 자세(마에)가 중요하며, 일격필살의 기세로 덤벼들어야 한다.

간합, 허실, 세배(勢背) 등도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내 공격의 사정거리와 상대 자세의 약점이라는 소박한 개념이었을 것이다.

멀리 있는 적을 공격하는 것이기 때문에 공격 목표가 단순하다. 상중하단과 좌우 정도 연습하면 충분하다. 중국 병서에 실린 무술들이 단순한 것은 이 때문이다. 상중하단 찌르기와 좌우 후려치기만 연습하면 군대에서 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상황에서도 충분했을 것이다.

방어하는 입장에서는 현대의 격투기들처럼 적극적으로 방어 자세를 잡을 필요가 없다. 아니 애초에 멀리 있기 때문에 방어보다는 어떻게 빨리 반격할 것인가 위주로 자세를 잡는다. 팔이나 무기를 앞으로 뻗으면 상대와의 거리를 재거나 방어하는데 유리하다.

반격 자체도 역시 단순했을 것이다. 적의 강한 공격을 한번만 막아내면 된다. 이 교리는 현재도 일본 무술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한팔로 적의 주먹을 막고 카운터를 치는 자세 같은 것들이 고전적으로는 최고의 비법이었을 것이다.

중국 병서나 장권에 방어 기술은 잘 나오지 않는 것도 이런 까닭이라고 본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현재 많은 복원들이 너무나도 가까이서 기교를 부리는 것으로 해석한 것 아닌가 한다.

이렇게 서로 멀리 떨어져 있다가 붙어서 한번 겨뤘을 때 잘 안풀리면 다시 어느정도 거리를 두고 떨어져서 빈틈을 노렸을 것이다. 여기서 합(合)의 개념이 나왔을 것이다.

이런 스타일의 무술이 수세기 동안 구대륙에서 통용되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이런 전투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방법이 연구되었을 것이다.

내 생각에 그 방법의 첫번째는 방패라는 도구를 이용하는 것이고, 두번째로는 상대와의 거리를 좁혀 기교를 쓰는 것이며, 세번째는 유술(柔術)과 결합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방패를 사용하면 방어에 여유가 생기고, 상대와의 간격도 매우 가까워진다. 이것이 중국 남부에서 짧은 칼을 사용하는 빠른 공격을 발전시켰을 수도 있다. 반대로 짧은 칼을 일상에서 언제나 사용했기 때문에 전쟁시에는 방패가 나왔을 수도 있다.

또 멀리서 달려들 필요가 없이 가까이 붙어있을때 빠른 기술을 쓰면 상대를 더 쉽게 제압할 수 있다.

가까이서 싸우기 때문에 여러가지 컴비네이션 기술을 연습할 필요가 있고, 힘도 어느정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사용하는 무기나 몸의 부위도 다채로울 수 밖에 없다.

공격부위도 매우 다양해진다. 단순히 상중하단이 아니라 인체의 특정 부위를 공격 목표로 삼게 된다. 간합과 허실의 개념이 입체적으로 확장되며, 사정거리 역시 리치(reach) 같은 자기 자신의 공격 가능 범위라는 개념으로 확장된다.

상대가 다채로운 컴비네이션과 주먹 이외의 다른 부분을 쓸 수도 있기 때문에 방어는 단순하지가 않다. 양손을 모두 방어에 사용하거나 두번 이상 방어를 해야할 수도 있다.

또 가까이서 내가 인식하기 전에 공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방어 자세를 어느정도 갖춰야 한다. 상대의 공격도 직전에 파악해야 한다. 상대의 어깨를 본다던가 하는 기술이 이런 거리에서 사용되는 거 같다.

중국 무술에서는 아마 남권과 당랑권이 이런 특성을 갖고 있지 않나 추측해 본다. 일본 무술에서는 이런 역할을 죽도 검도가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기존 검술 입장에서는 죽도 검도가 쓸모없게 느껴졌겠지만 기존 검술보다 매우 가까운 거리에서 다채로운 변화와 빠른 반응을 요구하는 죽도 검도는 새로운 기술의 도입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중단(정안)이 검도의 기본이 되는 것도 특정 자세를 잡기보다 어떻게든 빠른 대응과 방어가 가능하기 때문 아닐까? 북진일도류가 기술이 뛰어나다는 평을 받게 된 것도 죽도를 단순히 검을 대체하는 연습도구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 죽도 기술 자체가 검술의 기술을 향상시키는데 상호영향을 줬기 때문 아닐까?

태권도 역시 유사한 면이 있다. 초기에는 가라데식 카타를 중시했지만 실제로 포인트 경기로 발전하면서 그런 자세들이 큰 의미가 없어졌다. 가까이서 발이 교차했을때의 변화가 중요해졌다.

마지막으로 언급할 것은 유술이다. 유술은 역사가 매우 오래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그것이 적극적인 전투기술로서 도입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을 것이다. 태극권이나 대동류 같은 것들이 예가 되지 않을까 싶다.

기술이 서로 접촉하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간합이나 허실을 단순하게 표현하기가 곤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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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ident Evil: Vendetta 격투장면

Resident Evil: Vendetta(2017)의 마지막 격투장면. 총을 이렇게 많이 피하는 격투장면은 처음 본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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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때 전통무술 탄압이 있었을까 없었을까?

일제때 전통무술 탄압이 있었을까 없었을까?

답은 예이자 아니오다.

일제때 조선의 전통적인 체육활동은 별로 권장되지 않았다.

송덕기도 순사들 때문에 운동을 못했다고 했고, 국궁, 씨름 같은 것들도 활동이 상당히 위축되어서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 애를 썼다.

즉 그 과정에 대한 세밀한 연구가 필요하긴 하겠지만, 일제는 조선의 전통무술을 탄압한 것이 맞다.

아닌 것은 존재하지도 않았던 단군시대 전통무술이 일제떄 사라졌다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부활했다는 주장인 것이다.

아직 이 둘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어서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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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 / 조사의 필요성

1.

얼마전 송일훈 교수(로 추정되는 분)의 대동류합기유술 관련 글 수정 요청이 있었다. 해당 글은 내가 오래전에 대동류합기유술 계파들을 인터넷의 정보들만 보고 정리한 것이었다.

송일훈 교수의 지적을 받고 글을 다시 읽어보니 당시 글을 쓰면서 내가 평소 가지고 있던 한국 합기도 역사에 대한 불신 같은게 나도 모르게 그 속에 표출되어 있었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한국 합기도 역사에 대한 부정적인 부분이 일정정도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그런 관점이 대동류를 오랜시간 수련한 사람의 노력까지 부정하는 일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던거 같다.

비록 블로그의 글이지만 나의 미숙한 점을 반성한다. 관련 부분은 일단 삭제해두었다.

2.

그러나 나는 여전히 몇가지 의문점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이런 것들은 인터넷의 글들만 보고서는 알기 힘들 것이다. 직접 발로 뛰어서 알아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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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수련하기

양가태극권 같은 경우는 하나의 동작을 하염없이 느리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무술이 그렇게 천천히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수련 목적에 맞는 적당한 속도가 있다. 심지어 어떤 동작은 빨리 움직여야 그 변화가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아’는 늘여서 발음할 수 있지만 ‘악’은 급하게 끝맺어야 말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움직임은 시간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 동작에 대한 이해 없이 느리게 수련하라거나 빨리 수련하라고 주문하는 건 맞지 않는 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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