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예도보통지는 고급 무예인가?

무예도보통지 기예의 복원 여부와 별도로, 과연 거기에 실린 무술의 수준이 높은 것인가? 하는 의문이 세간에 있어왔다. 주로 복원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진영에서 이 문제를 제기했던 거 같다.

시간이 흐르고 정보가 조금 더 쌓이니까 개인적으로 이 문제의 답을 알게 된 거 같다. 무예도보통지에 실린 무술은 당시 시점에서 가장 최고의 무술이 맞다고 본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어떤 분야의 정보가 정리될 때는 당시에 일반적으로 가장 훌륭하다고 여겨지는 정보를 모으게 된다. 예를 들어 의학 서적이라면 일반적으로 가장 효과가 좋은 것을 당대 명의에게 물어서 정리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물론 이것이 당대의 모든 무술 기술이 종합되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분명히 씨름, 궁술, 투석전, 사냥 기술, 기마술, 체포술이나 포박술, 화포와 화약 사용법을 비롯한 각종 군사 기술들이 무예도보통지 편집 순간에 분명히 조선 사회에 존재했을 것이고, 심지어 편찬자들도 알고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편찬자들은 이러한 정보들이 편집 의도에 적합하지 않다고 보고 제외했다.

고급 기술이었음은 분명했다고 보지만, 문제가 몇가지 있다. 우선 무예도보통지의 기사들을 보면 기예를 중국인에게서 배워올때 그 기간이 매우 짧았음을 알 수 있다. 무술 기술을 짧은 시간에 과연 얼마나 배워올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또한 배워온 사람들이 대부분 이런 종류의 무술에 경험이 없는 문신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으로는 조선에 새로운 문물이 수입될 때, 오랜 시간이 아닌 짧은 시간에 들여와 독자적인 연구로 완성시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경향이었을 수도 있다.

두번째로는 어떻게든 배워온 이 기예들이 정상적으로 전수가 되었을까 의심이 된다. 이 기예들은 익히기 어렵고 연습을 위해서는 시간과 공간, 또 좋은 무기라는 꾸준한 경제적인 뒷받침이 없다면 전달되기 어렵다. 구체적인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어쩌면 무예도보통지의 기예들은 의외로 훈련인원이 매우 적었을 수도 있고, 일제 이전에 이미 유실의 위기를 겪고 있었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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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예도보통지의 투로적 특성

여태까지 이루어진 무예도보통지의 복원을 보면, 대부분 현재 유포되어 있는 무술의 공방의 개념을 기반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 뿐만 아니라 중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기효신서 등의 복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무예보통지 혹은 기효신서의 무예가 과연 그러한 현대 무술의 공방과 간합을 가정하고 만들었는지는 의문일 수 밖에 없다. 대표적으로 검도의 간합을 기준으로 잡는 경우가 많은데 이 간합은 일본 검술에서도 낯선, 죽도 검도의 독자적인 특성으로, 이것을 무예도보통지에 적용해야할 까닭은 없을 것이다.

(1) 내 생각에 무예도보통지에 실린 무술들은 대부분 구체적인 공방을 따지지 않는 투로(套路) 무술이다. 그 구성에 있어서도 방향전환이나 3번 반복, 기세와 수세 같은 현대 투로들에 남아있는 특성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중국 무술의 투로라는 것이 명나라 말기에는 이미 완전히 성숙되어 있었던 것이다.

움직이는 범위 역시 매우 넓어서 시연할 경우 현재도 매우 넓은 공간이 필요하다. 날이 있는 무기를 들었을 경우 더욱 넓은 공간이 필요할 것이다. 무예도보통지의 내용 그대로 훈련도감 연병장에서 동시에 연무를 할 수 있는 인원도 한정되어 있었을 것이다. 조선시대에 무예도보통지의 기예를 일반 군인들이 광범하게 수련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2) 투로는 공방을 연습하는 것이지만 실제 구체적인 공방을 하는 것이 아닌 일종의 단련이다. 이것은 권법을 실제로 사용하지는 않는다는 권법편의 설명과도 통한다.

실제 공방을 가정한 연습은 무예도보통지에 교전(交戰)으로 따로 설명되어 있다. 이것은 현대 중국 무술의 수련 방식과도 비슷한데, 현대 중국 무술 역시 투로로 대표되는 혼자서 하는 연습과 상대를 두고 하는 연습으로 크게 구분된다.

이 교전 이외의 부분은 정교한 공방을 가정하고 복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3) 투로의 특징 중 하나는 의례성이 강하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시연하기 위한 용도로도 사용된다. 그 대표적인 것이 본국검이었을 것이다. 중요한 행사에서 칼춤을 보여주는 것은 중국과 조선 모두에서 전통이었다.

기창(旗槍)도 그런 의미로 추가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마상재나 격구 등이 무예도보통지에 포함된 이유도 이렇게 보면 어색하지 않다. 조금 범위를 넓히자면 마상쌍검 역시 의례를 위해 사용되었을 수도 있으며, 예도의 여선참사세 같은 것도 관객을 위한 것이었을 수도 있다.

(4) 무예도보통지에서 예외적인 것이라면 예도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아마도 투로라는 형식이 널리 퍼지기 전에 나온 고전적인 수련 방법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중국에서도 다시 찾았다는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예도 역시 구체적인 공방이 담겨있지 않은 연습을 위한 짧은 투로일 수 있다. 현대의 검술과 같은 방법으로 해석할때 매끄럽게 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정리) 무예도보통지 또는 기효신서를 현대 무술 기술의 정교한 공방으로 해석을 할 필요가 없다. 구체적인 공방을 가정하지 않은 투로로써 해석하는 것이 더 적당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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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후(肉厚) (2)

아무리 무술 기술이 신묘하다고 해도 결국 근육에서 나오는 물리적인 힘이기 때문에, 이론적으로 생각해보면 같은 기술이라고 해도 근육이 많은 사람의 기술이 더 강할 것이다.

그런데 무술에서는 근육량을 늘리는 운동을 중시하지 않기 때문에, 처음부터 기골이 장대한 사람이 무술을 배우면 효율이 더 좋게 된다.

애초에 무술 기술도 약자의 구명지술이나 병자의 치료술이 아니라 강자를 위한 전투 기술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신체 조건이 좋은 사람을 제자로 삼으려는 문화가 생겼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라는게 참 신기한 것이어서, 오히려 이런 신체 조건의 열세를 극복해서 이름을 날린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전해져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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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술과 거리

상고하기는 어렵겠지만 아마 우리가 무술이라고 부를 수 있는 기술들의 원래 모습은 꽤 멀리 떨어져 있는 적을 상대하는 기술이었을 것이다.

무기를 들고 서로 맞설 때 심리적으로 서로 가까이 붙어 있을 수가 없다. 사냥의 경우도 어느정도 거리를 두고 무기를 사용한다.

아마 용기있게 한걸음에 달려가서 큰 기술로 공격하는 것이 주된 공격 방법이었을 것이다.

큰 기술을 쓰기 위해서는 준비 자세가 중요하며, 한편으로는 상대의 자세를 보고 어느 부분이 약점인지 파악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또, 자신의 사정거리도 알아야 한다. 현재 남아있는 일본의 검술들이 이런 특성을 가지고 있다. 자세(마에)가 중요하며, 일격필살의 기세로 덤벼들어야 한다.

간합, 허실, 세배(勢背) 등도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내 공격의 사정거리와 상대 자세의 약점이라는 소박한 개념이었을 것이다.

멀리 있는 적을 공격하는 것이기 때문에 공격 목표가 단순하다. 상중하단과 좌우 정도 연습하면 충분하다. 중국 병서에 실린 무술들이 단순한 것은 이 때문이다. 상중하단 찌르기와 좌우 후려치기만 연습하면 군대에서 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상황에서도 충분했을 것이다.

방어하는 입장에서는 현대의 격투기들처럼 적극적으로 방어 자세를 잡을 필요가 없다. 아니 애초에 멀리 있기 때문에 방어보다는 어떻게 빨리 반격할 것인가 위주로 자세를 잡는다. 팔이나 무기를 앞으로 뻗으면 상대와의 거리를 재거나 방어하는데 유리하다.

반격 자체도 역시 단순했을 것이다. 적의 강한 공격을 한번만 막아내면 된다. 이 교리는 현재도 일본 무술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한팔로 적의 주먹을 막고 카운터를 치는 자세 같은 것들이 고전적으로는 최고의 비법이었을 것이다.

중국 병서나 장권에 방어 기술은 잘 나오지 않는 것도 이런 까닭이라고 본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현재 많은 복원들이 너무나도 가까이서 기교를 부리는 것으로 해석한 것 아닌가 한다.

이렇게 서로 멀리 떨어져 있다가 붙어서 한번 겨뤘을 때 잘 안풀리면 다시 어느정도 거리를 두고 떨어져서 빈틈을 노렸을 것이다. 여기서 합(合)의 개념이 나왔을 것이다.

이런 스타일의 무술이 수세기 동안 구대륙에서 통용되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이런 전투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방법이 연구되었을 것이다.

내 생각에 그 방법의 첫번째는 방패라는 도구를 이용하는 것이고, 두번째로는 상대와의 거리를 좁혀 기교를 쓰는 것이며, 세번째는 유술(柔術)과 결합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방패를 사용하면 방어에 여유가 생기고, 상대와의 간격도 매우 가까워진다. 이것이 중국 남부에서 짧은 칼을 사용하는 빠른 공격을 발전시켰을 수도 있다. 반대로 짧은 칼을 일상에서 언제나 사용했기 때문에 전쟁시에는 방패가 나왔을 수도 있다.

또 멀리서 달려들 필요가 없이 가까이 붙어있을때 빠른 기술을 쓰면 상대를 더 쉽게 제압할 수 있다.

가까이서 싸우기 때문에 여러가지 컴비네이션 기술을 연습할 필요가 있고, 힘도 어느정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사용하는 무기나 몸의 부위도 다채로울 수 밖에 없다.

공격부위도 매우 다양해진다. 단순히 상중하단이 아니라 인체의 특정 부위를 공격 목표로 삼게 된다. 간합과 허실의 개념이 입체적으로 확장되며, 사정거리 역시 리치(reach) 같은 자기 자신의 공격 가능 범위라는 개념으로 확장된다.

상대가 다채로운 컴비네이션과 주먹 이외의 다른 부분을 쓸 수도 있기 때문에 방어는 단순하지가 않다. 양손을 모두 방어에 사용하거나 두번 이상 방어를 해야할 수도 있다.

또 가까이서 내가 인식하기 전에 공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방어 자세를 어느정도 갖춰야 한다. 상대의 공격도 직전에 파악해야 한다. 상대의 어깨를 본다던가 하는 기술이 이런 거리에서 사용되는 거 같다.

중국 무술에서는 아마 남권과 당랑권이 이런 특성을 갖고 있지 않나 추측해 본다. 일본 무술에서는 이런 역할을 죽도 검도가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기존 검술 입장에서는 죽도 검도가 쓸모없게 느껴졌겠지만 기존 검술보다 매우 가까운 거리에서 다채로운 변화와 빠른 반응을 요구하는 죽도 검도는 새로운 기술의 도입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중단(정안)이 검도의 기본이 되는 것도 특정 자세를 잡기보다 어떻게든 빠른 대응과 방어가 가능하기 때문 아닐까? 북진일도류가 기술이 뛰어나다는 평을 받게 된 것도 죽도를 단순히 검을 대체하는 연습도구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 죽도 기술 자체가 검술의 기술을 향상시키는데 상호영향을 줬기 때문 아닐까?

태권도 역시 유사한 면이 있다. 초기에는 가라데식 카타를 중시했지만 실제로 포인트 경기로 발전하면서 그런 자세들이 큰 의미가 없어졌다. 가까이서 발이 교차했을때의 변화가 중요해졌다.

마지막으로 언급할 것은 유술이다. 유술은 역사가 매우 오래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그것이 적극적인 전투기술로서 도입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을 것이다. 태극권이나 대동류 같은 것들이 예가 되지 않을까 싶다.

기술이 서로 접촉하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간합이나 허실을 단순하게 표현하기가 곤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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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ident Evil: Vendetta 격투장면

Resident Evil: Vendetta(2017)의 마지막 격투장면. 총을 이렇게 많이 피하는 격투장면은 처음 본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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