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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검도회 조선세법 분석 (1)

2008年 3月 6日 (Thursday)

무예도보통지와 이전에 다른 단체에서 발표한 예도를 근거로, 이종림 부회장이 만든 대한검도회의 조선세법을 하나씩 살펴 보려고 한다.

대한검도회의 조선세법은 『정통 검도교본』(삼호미디어, 2006)를 주로 참고하였다.

1. 칼의 패용방법

조선시대 자료를 보면 환도를 허리에 패용하지 않는다. (환도의 패용 방법에 대해선 다음 글을 참조할 것 — 고어펀드의 망상천국: 조선시대 환도 패용법)

즉 대한검도회의 조선세법은 조선시대 사용되었던 환도와 무예도보통지를 기준으로 하지 않고, 현재의 일본도와 일본도의 패용 방법을 기준으로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앞으로 계속 살펴보겠지만 이 차이는 결국 기술상의 해석의 차이를 만든다.

2. 발검술

대한검도회의 조선세법은 모든 동작을 발검으로 시작하여 납검으로 끝을 맺는다. 그러나 무예도보통지의 예도는 칼집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무예도보통지 예도보의 원안이라고 할 수 있는 무비지 역시 그러하다.

발검술이 아닌 예도보의 동작을 발검술로 만들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발검을 위한 자세를 추가하거나 무예도보통지 예도보와 다른 해석을 할 수 밖에 없다.

(나는 무예도보통지의 예도를 발검으로 시작해 납검으로 끝나는 거합 식으로 해석하는 아이디어가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예도보의 기술 배열과 간극이 너무 커진다.)

이전에 전해져 내려오는 검술을 칼과 패용방법을 바꾸어 한다면 그건 일종의 변형이라고 볼 수 있겠으나, 새롭게 복원하는 마당에 칼과 패용방법부터 다르다면 그것을 복원이라 이르기 힘들 것이다.

검도 수련과의 통일성을 기하기 위한 피치 못할 선택이라고 하여도, 우선 원전에 가장 가깝게 복원을 하고, 그 다음 검도 수련에 맞게 변형하는게 순서일 터이고, 그 변화 내용을 명시해서 역사에 대한 오해가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김재일의 『조선세법』(화산문화사, 2000)이 중간 단계 였을까?)

또 일본의 칼과 일본의 칼 패용법으로 일본의 칼 쓰는 법을 사용하는데 어떻게 우리 민족의 무술로서 독자성을 찾을 수 있겠나? 오히려 적극적으로 차이를 만들어 내는게 필요한 것 아닌가?

“어렵던 시절 일제치하에서도 그 맥을 이어 오늘에 이르게 한 것이다.”

2008年 3月 6日 (Thursday)

대한제국은 일본이 개발한 경기방식을 받아들여 격검을 군경의 교과목으로 채택하고 군사훈련에 적용시켰으며, 사립학교에서도 청소년들에게 권장하게 하였다. 우리의 선각자들은 어렵던 시절 일제치하에서도 그 맥을 이어 오늘에 이르게 한 것이다.

— 이종림 (대한검도회 부회장), 『정통 검도교본』(삼호미디어, 2006), 11쪽.

일제 치하에서 일본이 보급한 검도를 수련하는게 왜 힘들었을까? 조선인은 검도 수련을 못하도록 막았나? 가르치는데 차별을 두었나?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혹 일본 무술을 한다고 동포들이 등을 돌렸나?

대한제국 시절 군경이 받아들인 검도는 일본의 검도와 다른 맥을 가지고 있어서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는 건가? 대한제국이 사립학교에 검도를 권장한건 사실인가

아니 1880년대 후반 대한제국의 군경이 검도를 도입하기는 한 건가? (같은 책, 37쪽.) 大日本武徳会가 생긴게 1895년, 대한제국이 생긴게 1897년 아닌가?

그리고 그들이 선구자면 선구자지, 왜 선각자인가? 검도의 장점을 다른 조선인들보다 먼저 깨닫고 원수의 것이지만 열심히 배웠다는 건가? 아니면 검도의 뿌리가 우리에게 있음을 그분들은 간파 하셨다는 이야기인가?

“왜검을 특히 상세하게 수록한 우리 선조들의 참뜻을 잊어서는 안 된다.”

2008年 3月 5日 (Wednesday)

일본이 검도를 스포츠로 개발한 것은 그들의 자랑이요, 그 뿌리가 우리에게 있음은 우리의 긍지이다. 어제(御製)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의 24반 무예 중에 〈왜검(倭劍)〉을 특히 상세하게 수록한 우리 선조들의 참뜻을 잊어서는 안 된다.

— 이종림 (대한검도회 부회장), 『정통 검도교본』(삼호미디어, 2006), 10쪽.

『무예도보통지』에 왜검이 실린 건 일차적으로 적의 무기술을 파악하기 위한 것 아닌가? 검도 수련자는 적이 될 수도 있는 일본의 기술을 파악하려고 수십 년 간 수련을 하는 것인가?

『무예도보통지』의 왜검은 적의 것이지만 뛰어난 기술이라 자존심을 버리고 수입한 것일까? 그렇다면 검도는 우리가 자존심을 버리면서까지 받아들여야 할 기술인가? 올림픽에 메달이 걸린 것도 아닌데? (오히려 검도를 종목으로 밀고 있는 건 우리다.)

「왜검」이 어떤 점에서 『무예도보통지』의 다른 기예들보다 특별히 더 상세하게 수록되어 있다는 것인지도 잘 모르겠다.

그리고 왜검이 적국의 무기술이고, 그것이 검도의 근원이 되었다면, 우리는 임진왜란 때 우리가 전해준 무기술에 진 셈인가? 안타깝지만 한편으로 긍지를 가져야 할까?

‘검도를 스포츠로 개발’했다는 말은 ‘스포츠화 되기 이전의 검도’가 존재했는데, 그것을 기반으로 ‘스포츠 검도’를 만들었다 뜻인가? 검도가 만들어지기 이전의 재료를 검도라 부를 수 있는가?

「검도계 분열조짐 보인다」(2004)

2008年 3月 2日 (Sunday)

2004년 10월 7일에 무토뉴스에 올라온 기사.

검도 고단자들이 협회를 나와 새로운 검도협회를 만들었다는 얘기는 얼핏 들었었는데, 검도와 그다지 연관이 없다 보니 어떤 상황인지 잘 몰랐다.

이 기사를 보니 좀 정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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