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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기의 인기 비결

2008年 5月 13日 (Tuesday)

그 단체가 가장 복원을 잘하고 있고(?) 우리의 옛 것을 찾으려 하는 의지가 대단해 보인다. 무예24기를 아는 사람은 누구나가 다 인정하는 것 아니었었나?? — 고려무사

DCInside 검도갤러리에 간혹 올라오는 글을 보면 무예도보통지를 복원한 단체들 중에서 24기의 인기가 가장 높다.

대신 오로지 실리적인 것만을 추구하는 현대 검도의 관점에서 볼 때는 왠지 화려한 춤사위같아 보이고 검리에 부합하지 않는 듯 보일지도 모른다. — 피곤합니다

미리 변호해 주는 말까지 한다. 이 게시판에선 항상 해동검도와 찬바라가 검리에 어긋난다고 비판을 받는데, 왜 24기에는 이리도 관용적일까? 24기 시연 동영상을 보면 내 눈에는 해동검도보다 더 개칼로 보이는데 말이다.

또 초기 24기는 당연히 경당의 영향권 안에 있는데, 경당에 대한 찬사나 경의는 찾기 힘들다. 예를 들어 같은 글에서 최형국은 ‘선생’이지만 임동규는 그냥 ‘임동규’다. 옥중에서 만들었다는 말이 예전에는 전설이었지만 지금은 의심스럽게 들리고, 그의 사상 이야기가 언제나 등장한다.

이런 24기의 인기는 어디에서 출발하는 것일까? 우선은 24기의 활발한 활동이 첫번째 이유일 것이다. 수원에서의 대규모 행사 역시 볼거리였을 것이다. 그 화려함과 스케일. (그러나 이 행사는 분명히 경당의 행사였다.)

두번째로는, 최형국의 기본적인 아이디어가 검도에서 출발했기 때문인 거 같다. 즉 모양은 검술을 하지만 그 내부적인 이론은 검도를 그대로 가지고 있기 때문인 거 같다. 홈페이지의 질문/답변을 대충 훑어 보면 검 쓰는 법에 대한 질문이 많고, 그에 대한 답 역시 검도의 기술과 요령으로 답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특성이 검도를 하는 사람들, 그리고 검도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모양도 괜찮으면서 칼질도 시원하다고 느끼게 해주는 듯 하다. 즉 중국검술처럼 화려하게 움직이는 일본검도, 이것이 우리의 환타지였던 것 같다. 사상적으로도 고구려 무인(무예도보통지 어디에 고구려 얘기가?)이 등장하는가 하면 일본 무사도(정확히 말하면 일본 Bushido는 아닐테고, 한국의 보수적인 의리론일 듯) 비슷한 언명을 자주 언급한다. 이런 특징은 검도를 아는 사람이 봤을 때 매우 훌륭한 이론 체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비춰질 가능성이 높다. (왜냐면 검도야말로 검술의 최고봉이니까)

어쩌면 광복 이후 보여주었던 전통 검술이라는 것들이 검도(거합 포함)를 변형한 것이라 전통 검술이라는 것은 저런 것이라고 우리 뇌리에 박혔는지도 모르겠다. 나아가 우리에게 그럴듯한 검술의 전통이 없었고, 일본 검도(와 거합)가 검술 문화로서 우리에게 깊이 뿌리 박혀 있는 건지도.

그러고보니 해동검도와 코드가 많이 겹친다. 우리 사회의 무술 성공 코드는 이것? 비슷한 걸 생각하기 시작하니까 베기를 자주 한다는 것도 비슷하고, 당연히 진검에 관한 욕구가 강한 것도 비슷하다. 무예도보통지에 나오는 베기 연습 얘기는 왜검에만 남의 나라 얘기 하듯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좀 늦은 감이 있지만 혹시 내가 도장할 일이 있으면 이 코드를 좀 살려야 겠다. 아 근데 난 검도랑 베기에는 전혀 문외한인데.)

그러나 역시나 이것은 우리의 꿈을 채워주는 것 뿐이다. 무술은 조금 더 복잡하고 통일적인 체계를 필요로 한다고 본다. 김광석, 임동규 선생님 두 분은 무예도보통지 내에서 무술을 설명하고자 하셨다. 김광석 선생님의 책들을 보면 이론의 전체적인 뼈대를 무예도보통지의 작은 조각들을 모아서 구성하려는 경향이 강하게 느껴지고, 임동규 선생님 역시 외부의 이론을 최소한도로 줄이고 무예도보통지의 자구에서 무술을 구성하려고 노력하셨다. 두 분 모두 역사관이나 윤리 역시 고구려를 달리지 않고, (임동규 선생님이 고구려보다 더 옛날로 날라가시는 경우가 있는거 같긴 하지만) 일본 무사도를 흉내내는 일은 더더욱 없다. 굳이 진검을 써야 한다고 믿지도 않으셨었는데 사회적인 윤리 문제도 있었겠지만 목검과 큰 차이를 느끼지 않으셨었던 것은 아닐까?

아마 그래서 두 분 선생님들의 연구 시간이 길고도 길었던 거 같다. 몸으로 직접 실험하고 그것을 쉽게 바꾸지 않았던거 같다. 투로가 바뀌는 것도 최소한 몇 년, 길게는 10년 단위로 바뀌었던 이유가 어쩌면 여기에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24기

2008年 5月 11日 (Sunday)

24기가 십팔기를 따라했다는 말을 (십팔기) 선배들에게 처음 들었을 때, 이분들이 십팔기를 너무 사랑하다 보니 조금 비슷한 부분이 있는거 가지고 침소봉대한 거 아닌가 했는데, 우연히 인터넷에서 24기 시범 영상들을 보고나니 당황스럽다.

동작은 뭐 같은 책 보고 하는거니까 비슷할 수도 있고, 십팔기 동작은 책으로도 출판되었으니 참고할 수도 있겠지만. 왜 십팔기협회 내부에서 편의상 사용하는 이름이 사용되는 것인지. (출판된 책에는 실려 있지 않다.) 더군다나 평소에 십팔기 측은 한문 해석도 못 한다고 하던 사람들이 무예도보통지에 근거하지 않은 이름들을 사용한다는 것도 이상하다.

이렇게 의심을 가지고 보니 동작도 단순히 참고만 했다기에는 속도나 자세가 너무 친근해 보이고.

참고로 「마르스」에 실렸던 인터뷰를 옮겨 본다.

한병철: 최형국 사범의 쌍검 시연을 보면, 김광석 선생의 십팔기협회의 쌍검과 흐름이 매우 비슷함을 느낀다. 이쪽의 쌍검을 배웠거나, 혹은 비디오를 보고 참고한 적은 있는지?

최형국: 비디오 등으로 몇번 본 적이 있다. 좋은 점은 참조하여 소화하려고 했다. 오래전부터 무예도보통지의 윤독&강독회를 진행중인데, 좋은 결과가 나올것이다. 지금 현재는 무예도보통지 학회를 만들어도 될 만큼 많은 연구자료를 축적했다. 십팔기협회의 무술을 직접 배운적은 없다.

— 격월간 「마르스」, 제17호, 2003년 1/2월호, 63쪽.

‘배국진, 진승래, 최형국 단원은 2008년부터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2008年 3月 10日 (Monday)

그 동안 (사)무예24기보존회 시범단원의 일원으로 활동했던 배국진, 진승래, 최형국 단원은 2008년부터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이 모든 것이 저희가 부덕한 탓이라고 생각되어 더욱 죄송스럽습니다.

비록 생계문제가 힘들더라도 武人답게 조용히 조직을 떠나는 것이 (사)무예24기보존회의 앞날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이러한 결정을 내렸습니다.

— 무예24기 보존회 자유게시판 (2008/02/25)

아 뒷얘기 궁금해;

남얘기 듣는걸 별로 좋아하는 편이 아닌데, 이상하게 무술계 얘기는 끌린다.

무협지에서 소문가지고 막 싸우고 그러는게 근거가 없는게 아니다. (소문은 어디나 존재하는건데 무술계는 폭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서 그런건지도.)

최형국 홈페이지의 글을 보면 수련 지도는 계속 하는 듯.

‘무인답게’라는건 뭘까? 한국의(최소한 조선의) 전통적인 무인상에 대해 누가 알고 있을까? 관직과 무관한 무인의 전통이 조선시대에 있었을까?

「십팔기냐? 24기냐? (3)」(2008)

2008年 2月 19日 (Tuesday)

… 조선이란 나라는 초기에서부터 국가에서 무예를 철저히 관리해온 나라였기 때문에 국가에서 정한 ‘십팔기(十八技)’이외에는 있을 수가 없는 환경이었다.따라서 십팔기(十八技) 단체의 기예를 도적질하여 전통의 무예문화라고 대중을 속인 24기 단체는 그것이 전수된 사승(師承)의 맥락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막중한 선현의 무예를 우리의 전통무예문화라고 대중 앞에 드러낼 때에는 당연히 밝혀야 하는 의무이기도 하다.현재 중공에도 전통을 빙자하여 어떤 기예나 문화를 사기하는 자는 바로 잡아들여서 사승(師承)을 문책하고 그 기예를 직접 당장에 펼쳐보라고 하고 만약 사술이 드러나면 바로 사형시켜서 혹세무민하는 행위는 엄격하게 다스린다고 한다.만약 정확히 밝히지 못할 경우 전통무예를 왜곡한 죄를 물어야 할 것이며 무예의 전수와 교육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24기를 지방문화재로 지정하려는 문화재 위원이나 해당 공무원들도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 박정천, “십팔기냐? 24기냐? <3>: 본조무예십팔반지명(本朝武藝十八般之名)과 24반(般)” 중에서 (데일리안, 2008/02/15) 강조는 제가 했습니다;

‘사형’, ‘책임’. 이거 거의 협박 수준의 글이로군요.

1.

24기 측은 자신들이 ‘사승관계 없는 복원’이고, ‘계속 변화해가는 것’임을 주장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아닌가? 하긴 그래가지고서는 지방문화재로라도 지정받기 힘들거 같긴 하다, 좀 알아봐야 겠다. 책의 내용을 충실히 재현하는 것만으로도 문화재가 될 수 있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그 복원 과정에서 당연히 십팔기도 참고를 하긴 했을 것이다. 같은 무예도보통지 해석인데 참고하지 않았다면 오히려 더 이상한 것일테고, 물론 그걸 그냥 참고 차원에서 보기만 했는지 실제 받아들였는지는 미지수. 같은 무예도보통지 해석이니 동작은 자연히 같지 않겠나? 그러니 공개적으로 비판하려면 24기가 십팔기의 무엇을 베낀 것인지 구체적인 예를 들어야 한다.

이런 불필요한 다툼을 해소하기 위한 방법 중에 하나는 자신이 만든 무술의 ‘변화’ 과정을 문서로 남기고, 어떠한 연유로 그리 바뀌었는지 설명해 두는 일일 것이다. 이것은 향후 발전적인 연구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데 한국 무예계에서 창작 과정에 관한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경우는 드문거 같다. 내 기억으로 창작과정을 가장 구체적으로 들었던 경우는 한풀이었는데, 한풀의 설명은 오히려 오리지널을 충실히 따라간다는 자부심에서 나온거 같다.

2.

게다가 무예 창작과정을 구체적으로 밝히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역사적인 문제 뿐 아니라 그 과정을 충분히 언어화하고 설명하는 것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직관적으로 만드는 경우나 다른 무술의 겉모양을 받아들이는 경우는 설명이 더욱 힘들 것이다.

오히려 요즘 가장 이론이 철저한 것은 ‘전통이 없는’ 이종격투기 쪽의 기술들이다. 남의 기술을 배워오더라도 실용성에 기초하고, 해부학적 이론을 바탕으로 하니 발전이 빠르다. 또 비교적 근대에 정리된 중국쪽 무술도 이론이 잘 정비되어 있는 편이다. 근대성의 발현인지, 중국공산당의 영향인지는 잘 모르겠다.

3.

자세한 과정을 스스로 밝힌다고 해도, 새로운 창작이나 복원에 대한 평가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무예도보통지를 근거로 하는 사람들끼리 해석에 대한 구체적인 비판을 서로 해보는건 어떨까? 다른 사람 밥상에 손대는 것이라 더 어려운 걸까?

4.

이런 문제에 대해 ‘사승관계가 분명한’ 십팔기는 족보를 널리 알리는 포지티브한 방법으로 대응하는 여유를 보이는건 어떨까? 요즘같은 경쟁시대에 너무 안일한 발상인걸까? 무술로 경쟁할 필요 없는 요즘이 오히려 무술을 교류하기 좋은 시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