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복규(1969~)의 십팔기 시범, 강기대련(剛氣對鍊).
대한십팔기협회에서 수련하는 약속대련으로, 무예도보통지에 실려있는 무술이 아니다. 자세한 설명은 『권법요결』(동문선, 1992), 345~398쪽 참조.
YouTube에는 없는게 없군요.
근데 왜 화면을 느리게 돌렸을까요? 1/4 정도의 속도.
최복규(1969~)의 십팔기 시범, 강기대련(剛氣對鍊).
대한십팔기협회에서 수련하는 약속대련으로, 무예도보통지에 실려있는 무술이 아니다. 자세한 설명은 『권법요결』(동문선, 1992), 345~398쪽 참조.
YouTube에는 없는게 없군요.
근데 왜 화면을 느리게 돌렸을까요? 1/4 정도의 속도.
2001년 쯤에 제 홈페이지에 적었던 십팔기 소개입니다. 지금 다시 읽어보니 고치고 싶은게 많습니다만 기록과 반성 차원에서 그냥 올려둡니다. (특히 현륭원지를 인용했다는 말을 좀 빼고 싶네요.)
십팔기(十八技)란 정조1 의 어명으로 편찬된 《무예도보통지》2 에 수록된 예도, 본국검, 장창, 권법등 18가지 기예3 를 이르는 말로, 영조때 사도세자가 섭정4 으로 일하면서 《무예제보》5 의 6가지 기예6 에 12가지 기예7 를 새로이 더하여 《무예신보》8 를 편찬한 것이 ‘18기’라는 이름의 유래입니다. (무예도보통지 서문의 내용. 《현륭원지》9 를 재인용)
현재 십팔기는 일제 강점기등을 거치면서 그 전승이 희미해진 것을 해범 김광석 선생이 연구, 보급한 것으로, 대한십팔기협회(1965년 설립)를 중심으로 도장과 동아리, 보존회, 시범단등을 통해 널리 알려지고 수련되고 있습니다. 특히 1987년 한국무예원 개원과 서울 대학로 바탕골예술관 소극장 한국무예 발표회 이후 대학가와 일반인에게 많은 보급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내가 추측의 표현을 쓰는 것은 로마자 표기법에 익숙하지 않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명칭을 바꿀 때 로마자 표기법을 참조했으면 좋았을 텐데.
아무튼 이 블로그에서는 혼동을 피하기 위해 현재 십팔기협회의 표기법을 사용하기로 한다. (다행히도 십팔기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다른 단체는 없다.) 십팔기를 다루는 논문들도 대부분 이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 조선이란 나라는 초기에서부터 국가에서 무예를 철저히 관리해온 나라였기 때문에 국가에서 정한 ‘십팔기(十八技)’이외에는 있을 수가 없는 환경이었다.따라서 십팔기(十八技) 단체의 기예를 도적질하여 전통의 무예문화라고 대중을 속인 24기 단체는 그것이 전수된 사승(師承)의 맥락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막중한 선현의 무예를 우리의 전통무예문화라고 대중 앞에 드러낼 때에는 당연히 밝혀야 하는 의무이기도 하다.현재 중공에도 전통을 빙자하여 어떤 기예나 문화를 사기하는 자는 바로 잡아들여서 사승(師承)을 문책하고 그 기예를 직접 당장에 펼쳐보라고 하고 만약 사술이 드러나면 바로 사형시켜서 혹세무민하는 행위는 엄격하게 다스린다고 한다.만약 정확히 밝히지 못할 경우 전통무예를 왜곡한 죄를 물어야 할 것이며 무예의 전수와 교육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24기를 지방문화재로 지정하려는 문화재 위원이나 해당 공무원들도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사형’, ‘책임’. 이거 거의 협박 수준의 글이로군요.
1.
24기 측은 자신들이 ‘사승관계 없는 복원’이고, ‘계속 변화해가는 것’임을 주장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아닌가? 하긴 그래가지고서는 지방문화재로라도 지정받기 힘들거 같긴 하다, 좀 알아봐야 겠다. 책의 내용을 충실히 재현하는 것만으로도 문화재가 될 수 있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그 복원 과정에서 당연히 십팔기도 참고를 하긴 했을 것이다. 같은 무예도보통지 해석인데 참고하지 않았다면 오히려 더 이상한 것일테고, 물론 그걸 그냥 참고 차원에서 보기만 했는지 실제 받아들였는지는 미지수. 같은 무예도보통지 해석이니 동작은 자연히 같지 않겠나? 그러니 공개적으로 비판하려면 24기가 십팔기의 무엇을 베낀 것인지 구체적인 예를 들어야 한다.
이런 불필요한 다툼을 해소하기 위한 방법 중에 하나는 자신이 만든 무술의 ‘변화’ 과정을 문서로 남기고, 어떠한 연유로 그리 바뀌었는지 설명해 두는 일일 것이다. 이것은 향후 발전적인 연구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데 한국 무예계에서 창작 과정에 관한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경우는 드문거 같다. 내 기억으로 창작과정을 가장 구체적으로 들었던 경우는 한풀이었는데, 한풀의 설명은 오히려 오리지널을 충실히 따라간다는 자부심에서 나온거 같다.
2.
게다가 무예 창작과정을 구체적으로 밝히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역사적인 문제 뿐 아니라 그 과정을 충분히 언어화하고 설명하는 것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직관적으로 만드는 경우나 다른 무술의 겉모양을 받아들이는 경우는 설명이 더욱 힘들 것이다.
오히려 요즘 가장 이론이 철저한 것은 ‘전통이 없는’ 이종격투기 쪽의 기술들이다. 남의 기술을 배워오더라도 실용성에 기초하고, 해부학적 이론을 바탕으로 하니 발전이 빠르다. 또 비교적 근대에 정리된 중국쪽 무술도 이론이 잘 정비되어 있는 편이다. 근대성의 발현인지, 중국공산당의 영향인지는 잘 모르겠다.
3.
자세한 과정을 스스로 밝힌다고 해도, 새로운 창작이나 복원에 대한 평가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무예도보통지를 근거로 하는 사람들끼리 해석에 대한 구체적인 비판을 서로 해보는건 어떨까? 다른 사람 밥상에 손대는 것이라 더 어려운 걸까?
4.
이런 문제에 대해 ‘사승관계가 분명한’ 십팔기는 족보를 널리 알리는 포지티브한 방법으로 대응하는 여유를 보이는건 어떨까? 요즘같은 경쟁시대에 너무 안일한 발상인걸까? 무술로 경쟁할 필요 없는 요즘이 오히려 무술을 교류하기 좋은 시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