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운동 한다한다 하면서 그냥 보낸 세월이 얼마나 되는지 이제 헤아리기도 어렵다.
2. 내가 왜 어려서부터 무술을 배우고 싶어했는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10대 이후에 큰 이유 중에 하나는 다른 사람의 폭력에서 자유롭고 싶어했던 것.
그런데 이런 마음가짐이 사람을 대하는 데 벽을 만들기도 했다. 결국 상대를 다 받아들이는 무술이 되어야 하는 거 같다. 어짜피 싸울 일도 별로 없는데. 그래서 근대 유명 무술가들이 유를 강조한 건지도.
3. 남의 나라 몸동작을 따라하기 싫었다. 일본 무술을 한국거라고 뻥친 사람들에 대한 배신감도 좀 있었고.
요즘은 별로 그런 생각이 없다. 대충 근대에 성립된 중국이나 일본 무술을 편하게 꾸준히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4. 중국 무술은 도가 수련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주관적인 세계로, 선생의 정밀한 지도가 없으면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즉 사승관계가 절대적이며, 요령이 수련량보다 중요할 수 있다. 어짜피 내적인 깨달음이기 때문에 실전을 할 필요도 없다.
일본 무술은 중국 무술만큼 내부적인 복잡함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그만큼 폼의 규정이 엄밀하고, 학습 목표가 외적으로 구체적으로 정해져 있다. 예를들면 격파 같은 것. 물론 똑같이 격파를 해낸다고 해서 동일한 무술을 한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므로 정신적인 깨달음, 심득이 중요하다. (시합 후에 자신의 심득을 적는 전통이 일본 무술에 있는 것이 우연이 아니다. 또 이런 과정을 거쳤다고 해도 실전에서 통하라는 법은 없는데, 일본 무술 만화나 영화 등에서 실전의 공포 극복이라는 주제가 등장하는 것도 당연하다고 본다)
글과 마찬가지로 무술은 외형적 동작 자체만으로도 물론 의미를 가지고 있으나, 컨텍스트 역시 중요하고, 나아가 외형과 컨텍스트들이 어우러진 전체 모델도 중요하다. 이것들을 모두 주고받는게 무술교육이다.
물론 글을 혼자 읽듯이, 스스로 동작을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기존 해석을 배우는 것보다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보다 그 동작 자체를 배워오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다) 같은 동작의 서로 다른 해석을 교환하는 즐거움도 물론 있을 것이다.
동작 자체가 객관일 수도 있다. 그러나 공방으로 연구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체조인 것이다. 그런데 시합이 전제된 무술이 아닌 다음에 공방을 계속 연구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거 같지 않다. (합기도 같은 경우 복잡하게 꺾는 것을 연구하기도 하는데, 공방과는 거리가 있을 것이다)
5. 내가3권이라는 말은 마치 수천년부터 전해져내려온 듯한 분위기를 풍기나, 아마도 최근에(빨라야 18세기 후반) 정리된 무술이기 때문에 비슷한 결론을 각자 얻은 거 같다.
이 무술들을 기반으로 더욱 새로운 무술들도 만들어졌다. 즉 중국무술은 여전히 발전 중이라는 거.
2009年 3月 18日 (Wednesday) at 5:00 pm |
무술을 편하게 꾸준히 할 수 있다면 정말 복 받은거겠지요.
전 요새 쿠도(다이다주쿠 가라데)가 끌리더군요. 부상 위험이 적으면서 즐겁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2009年 3月 24日 (Tuesday) at 2:24 pm |
나도 요새 대도숙 할 수 있으면 해보고 싶더라고;;; 나이 먹어서 왜 그런지 모르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