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단체가 가장 복원을 잘하고 있고(?) 우리의 옛 것을 찾으려 하는 의지가 대단해 보인다. 무예24기를 아는 사람은 누구나가 다 인정하는 것 아니었었나?? — 고려무사
DCInside 검도갤러리에 간혹 올라오는 글을 보면 무예도보통지를 복원한 단체들 중에서 24기의 인기가 가장 높다.
대신 오로지 실리적인 것만을 추구하는 현대 검도의 관점에서 볼 때는 왠지 화려한 춤사위같아 보이고 검리에 부합하지 않는 듯 보일지도 모른다. — 피곤합니다
미리 변호해 주는 말까지 한다. 이 게시판에선 항상 해동검도와 찬바라가 검리에 어긋난다고 비판을 받는데, 왜 24기에는 이리도 관용적일까? 24기 시연 동영상을 보면 내 눈에는 해동검도보다 더 개칼로 보이는데 말이다.
또 초기 24기는 당연히 경당의 영향권 안에 있는데, 경당에 대한 찬사나 경의는 찾기 힘들다. 예를 들어 같은 글에서 최형국은 ‘선생’이지만 임동규는 그냥 ‘임동규’다. 옥중에서 만들었다는 말이 예전에는 전설이었지만 지금은 의심스럽게 들리고, 그의 사상 이야기가 언제나 등장한다.
이런 24기의 인기는 어디에서 출발하는 것일까? 우선은 24기의 활발한 활동이 첫번째 이유일 것이다. 수원에서의 대규모 행사 역시 볼거리였을 것이다. 그 화려함과 스케일. (그러나 이 행사는 분명히 경당의 행사였다.)
두번째로는, 최형국의 기본적인 아이디어가 검도에서 출발했기 때문인 거 같다. 즉 모양은 검술을 하지만 그 내부적인 이론은 검도를 그대로 가지고 있기 때문인 거 같다. 홈페이지의 질문/답변을 대충 훑어 보면 검 쓰는 법에 대한 질문이 많고, 그에 대한 답 역시 검도의 기술과 요령으로 답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특성이 검도를 하는 사람들, 그리고 검도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모양도 괜찮으면서 칼질도 시원하다고 느끼게 해주는 듯 하다. 즉 중국검술처럼 화려하게 움직이는 일본검도, 이것이 우리의 환타지였던 것 같다. 사상적으로도 고구려 무인(무예도보통지 어디에 고구려 얘기가?)이 등장하는가 하면 일본 무사도(정확히 말하면 일본 Bushido는 아닐테고, 한국의 보수적인 의리론일 듯) 비슷한 언명을 자주 언급한다. 이런 특징은 검도를 아는 사람이 봤을 때 매우 훌륭한 이론 체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비춰질 가능성이 높다. (왜냐면 검도야말로 검술의 최고봉이니까)
어쩌면 광복 이후 보여주었던 전통 검술이라는 것들이 검도(거합 포함)를 변형한 것이라 전통 검술이라는 것은 저런 것이라고 우리 뇌리에 박혔는지도 모르겠다. 나아가 우리에게 그럴듯한 검술의 전통이 없었고, 일본 검도(와 거합)가 검술 문화로서 우리에게 깊이 뿌리 박혀 있는 건지도.
그러고보니 해동검도와 코드가 많이 겹친다. 우리 사회의 무술 성공 코드는 이것? 비슷한 걸 생각하기 시작하니까 베기를 자주 한다는 것도 비슷하고, 당연히 진검에 관한 욕구가 강한 것도 비슷하다. 무예도보통지에 나오는 베기 연습 얘기는 왜검에만 남의 나라 얘기 하듯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좀 늦은 감이 있지만 혹시 내가 도장할 일이 있으면 이 코드를 좀 살려야 겠다. 아 근데 난 검도랑 베기에는 전혀 문외한인데.)
그러나 역시나 이것은 우리의 꿈을 채워주는 것 뿐이다. 무술은 조금 더 복잡하고 통일적인 체계를 필요로 한다고 본다. 김광석, 임동규 선생님 두 분은 무예도보통지 내에서 무술을 설명하고자 하셨다. 김광석 선생님의 책들을 보면 이론의 전체적인 뼈대를 무예도보통지의 작은 조각들을 모아서 구성하려는 경향이 강하게 느껴지고, 임동규 선생님 역시 외부의 이론을 최소한도로 줄이고 무예도보통지의 자구에서 무술을 구성하려고 노력하셨다. 두 분 모두 역사관이나 윤리 역시 고구려를 달리지 않고, (임동규 선생님이 고구려보다 더 옛날로 날라가시는 경우가 있는거 같긴 하지만) 일본 무사도를 흉내내는 일은 더더욱 없다. 굳이 진검을 써야 한다고 믿지도 않으셨었는데 사회적인 윤리 문제도 있었겠지만 목검과 큰 차이를 느끼지 않으셨었던 것은 아닐까?
아마 그래서 두 분 선생님들의 연구 시간이 길고도 길었던 거 같다. 몸으로 직접 실험하고 그것을 쉽게 바꾸지 않았던거 같다. 투로가 바뀌는 것도 최소한 몇 년, 길게는 10년 단위로 바뀌었던 이유가 어쩌면 여기에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태그: 24기
2008年 5月 13日 (화요일) (6:15 오후) |
진검 팔고, 베기장 이용하게 하고, 이런 것들이 무술에 관한 사람들의 허영심을 만족시키는 듯 합니다.
2009年 3月 2日 (월요일) (2:39 오후) |
네, 안녕하세요. 윗글에 등장하는 최형국입니다.
소위 무예24기의 인기비결은 아주 단순합니다.
무인처럼 수련하고, 학자처럼 연구하며 그것을 무예공연으로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거기에는 오컬트도 없으며, 오직 수련하며 함께 복원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누가 원조니 아니니를 따지기 보다 ‘내가 땅을 밟고 서 있는 이곳에서 오늘의 수련을 펼쳐 미래를 이야기하는 것’ 그것이 무예도보통지에서 주장하는 실과 용의 정신입니다.
그럼. 늘 건강하시길 빌며.
-무예24기연구소장 최형국 드림-
*(대한)검도적 이론이 아니라, 그 형태의 칼을 들고 십수년 몸으로 풀어 보면 답이 나오는 결과물들입니다. 오히려 현재 저의 검법의 형태나 기본기에 대한 이론을 가지고 일본의 무도관련 대학에서 세미나를 진행하기도 합니다.
2009年 3月 3日 (화요일) (2:42 오전) |
최형국님께: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을 두서없이 적은 글이라 지금 다시 보니 실례되는 부분도 있는 거 같습니다. 이런 글에 친절히 답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혹 이 게시판에 또 들르신다면 질문을 조금 더 드리고 싶습니다:
1. 무예도보통지의 ‘실’과 ‘용’의 정신에 대해 조금 더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신지요.
2. 같은 무기를 써도 동일한 무술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무예도보통지의 맥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2009年 3月 3日 (화요일) (1:35 오후) |
네. ^^
먼저, 무예도보통지를 읽다보면(물론 원전으로요 ^^) 가장 눈에 띄게 등장하는 글자가 實과 用이라는 두 글자입니다. 대표적으로 무예도보통지의 병기총서에는 이런 부분이 있습니다. “무릇 국가는 실용의 정치를 해야 하고, 서민들은 실용의 업을 삼아야하며, 글 읽는 사람은 실용의 책을 선택해야 하며, 군사들은 실용의 기예를 익혀야 하고, 상공인들은 실용의 재화를 통용해야하고, 공장의 장인들은 실용의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진정 나라를 위하는 것이다”(해석은 제가 눈으로 대충했습니다.)
이렇듯 실용의 정치, 직업, 책, 기예(무예), 재화, 기구 등이 모일때 비로소 나라가 발전한다고 했습니다. 이런 유사한 해석으로 통지의 무기 제원을 그림으로 소개한 첫장을 보면 왜식, 화식이라고 구분해 놓고 우리나라 방식의 무기는 조식이나, 선식이 아닌 금식(今式)이라 표현 해 놓았지요. 바로 ‘오늘 우리에게 실용적으로 사용할 물건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라고 봅니다. 당시 조중일 삼국의 무예 중 실용적인 것을 모아 놓은 것이 바로 통지의 정신입니다. 누가 원조니 아니니를 따지기 전에 그 자세와 무기가 실용적으로 사용하고 있는가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먼저라는 것이지요. 겉모양은 화려하고, 마치 장난감 무기처럼 가벼운 무기를 가지고 통지의 정신을 논하는 것은 무리가 많습니다. (물론 공연적 요소라는 부분은 차후에 논할 문제입니다. 원형에 무기에 대한 고민과 수련 없이는 이 또한 근본적인 문제에 봉착하게 되지요)
2. 먼저 동일한 무기라면 동일한 자세가 나오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 숟가락은 국을 떠먹고, 젓가락은 반찬을 집는 도구이니 그 방식이 사뭇 다르다고 보일 지언정, 가장 실용적인 자세는 오히려 단순하지요. 물론 동일하게 되지 않을 수 있지만, 가장 오랜 세월 그것에 대한 노하우를 쌓은 곳이 있다면 배우고 익히는 것은 당연한 실용의 정신이라고 봅니다. 현재 대부분 단체에서 일본도의 형태와 길이, 무게로 수련한다면 일본도를 제대로 수련한 단체에서 수련하는 것이 가장 실용적일 것입니다. 따라서 조선식 환도를 가지고 수련하는 것이 통지의 몸짓을 재발견할 수 있는 좋은 요소가 될 수 있겠지요.
물론 님의 이야기 처럼 같은 무기를 써도 동일한 무술이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원리는 모두 똑같습니다. 특히 무기를 들었을 경우 그 움직임은 그리 다르지 않지요. 따라서 무예도보통지의 맥은 어디서 찾을 수 있다는 질문은 당연히 통지의 무기를 원형그대로 재현해서 사용해 보고, 당시 일본이나 중국의 비슷한 무기술 책과 비교해서 연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중국의 단도법선이나 수비록 그리고 일본의 병법비전서가 대표적이겠지요)
또한 통지와 짝이 되는 병학통의 진법을 제대로 이해해야 만이 통지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무예도보통지에는 무예의 비급이 담겨 있지 않습니다. 통지에는 조선시대 전투공간에서 얻어낸 군사들을 위한 무예가 담겨 있는 것이지요. 물론 그것들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나 이해를 바탕으로 한층 발전시킬 수 있는 소재는 충분합니다.
이미 무예도보통지의 기예는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완전히 소멸했습니다. 물론 전승했다고 악다구니를 쓰고 있는 단체도 있지만, 이미 무예계의 원로님들이 그 부분에 대해 정확히 이야기 하고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미 사라져 버린 무예이기 때문에 가장 먼저는 원형의 무기를 사용하고, 그 몸짓을 비교 검토하고 전투현장을 상정하여 재구성하는 것 속에서 맥을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따라서 무예도보통지의 24가지의 무예는 완전히 복원했다고 어느누구도 이야기 할 수 없습니다. 만약 완벽히 복원했다고 한다면 그사람에게는 분명히 타임머신이 있거나, 혹은 수백년의 세월을 산 진정한 산송장이거나 혹은 과대망상증 환자일 것입니다.
무예도보통지의 무예는 이미 사라졌기에 그 복원 과정 속에서 제대로된 몸짓이 만들어 질 것이라고 생각됩니다.(그 과정 자체가 소중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수정보완의 세월을 거치다보면 그것이 우리의 문화로 올곧게 설 수 있다고 봅니다. 늘 겸허히 무예를 수련하고, 통지를 비판적으로 재해석하는 과정… 그것이 맥이라고 봅니다.
그럼. 바로 인터넷으로 글을 달기에 두서없이 글 남깁니다.
늘 건강하시길 빌며…
-무예24기연구소장 최형국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