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의술진』을 읽다가…

By kabbala

오랜만에 『권의술진』을 꺼내서 읽었다. (『밝은빛 태극권 강의록』에 부록으로 실려 있다. 형의권이랑 관련 있을 법한 책이 집에 이거 밖에 없다.)

예전에 몰랐던 것이 새롭게 읽히는 것도 간혹 있었고, 그보다는 여전히 무슨 소린지 모르겠는 것이 많았는데 (번역의 문제일 수도. 한문 공부를 잠깐 해봤는데, 현대 한국어로의 번역이 절대 쉬운게 아니라는걸 절감했다. 또 현대 중화인민공화국 보통화를 배운다고 고전 해석이 쉽게 되는 것도 아니라고 본다.)

읽으면서 드는 의문 중에 하나는, 선생들이 하나같이 유불선 3교를 아주 쉽게 논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권법의 이것은 불교의 뭐, 권법의 이것은 유교의 뭐, 이런 식으로. 보통 사람들은 유불선 3교 중 하나에 입교하여 십수년을 공부해도 깨닫지 못하는 자가 많다는데, 어떻게 권술 선생들은 권법 뿐만 아니라 유불선 3교에도 능통한 것일까? (국가대표 운동 선수가 고등고시에도 합격하는 격이랄까?)

내 생각에는 이들이 유불선에 모두 정통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 같고, 당시 사회의 상식 수준에서 유불선 3교를 이해하고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인용하는 서적을 보면 유교에서는 주로 『중용』을 인용하였는데, 당시 사회의 교양 필독서였으리라. 또 불경은 구체적으로 인용하는 경우가 없다. 즉 어떤 묘한 경지가 있다는 선종의 교지를 직관적으로만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현대에 살아있었더라면 현재의 공교육에서 제공하는 과학이나 철학 이론으로 자신들의 무술을 설명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기독교 국가였다면 자신의 깨달음을 신의 은총으로 돌렸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슬람교 신자인 선생들의 글에는 그런 관점이 드러나지는 않는다. 일부러 숨긴 건가?)

이들이 비교적 자유롭게 인용하는 서적은 단서(丹書)인데, 도교의 이론을 자신들의 권법 수련 과정에 거의 100% 반영하고 있다. 역시 중국 무술이 오늘날과 같은 특성을 갖게 된 가장 큰 배경은 도교인거 같다.

중국 무술과 도교의 관계를 논할 때 흔히 노장(老莊)을 들먹이는데, 그보다는 인간 신체에 대한 과학적인(?) 모델을 가지고 있는 단서(丹書)의 영향을 많이 받지 않았을까? 무술의 발전 시기도 도교의 발흥과 겹치는 부분이 있는게 우연이 아닌 거 같다.

소림권은 어떻게 봐야 할까? 전설대로라면 육체적인 수련이나 깨달음의 현실적이고 육체적인 징험을 중시하는 인도의 전통(요가나 소승불교를 생각해 보면 되겠다.)이 불교와 함께 수입된 것으로 봐야 하겠지만, 지금 남아있는 소림권의 흔적들은 대부분 불교적인 깨달음과 무술적인 성취를 각각 독립적인 사안으로 보고 있다.

예를 들어 선정에 들었다고 해서 그가 무술에서도 고수가 되는 것은 아니고, 불교에 대한 이해와 무관하게 기술을 전할 수도 있다. 오히려 불교와 무술의 결합은 바다 건너 일본에서 일어났다. 그것도 기술적인 부분이라기 보다는 정신적인 차원에서 일어났다.

무술에 얼마나 도교적인 색채가 얼마나 어떻게 포함되어 있나를 보면 전래 시기를 추정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일본 무술에는 단순한 토납법만 가지고 있는 무술들이 있는데 이 무술들의 전래 시기는 송나라 이전. 뭐 이런 식으로.

고구려의 도교 전래 시기를 생각해보면 고구려 무술이라는 전통무술들의 진위도 판단할 수 있을 듯. (아… 아니다, 단학(선도)는 고조선에서 중국으로 건너간 것이니 불가능한 것일지도??

그러고보면 무술가의 인생이 방사와 닮은 부분이 있는거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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