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일요일, 그러니까 4월 27일에 요즘 국민들을 분노케 하는 중국 시위대를 현장에서 직접 봤다.
일부러 보고 싶어서 본게 아니고, 그냥 순전히 정동에 산책 나갔다가 봤다. TV를 안 보니 무슨 행사를 하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매스컴도 가끔씩은 봐줘야 한다. 아무튼 보도만 봐도 기분이 안 좋을 사건을 현장에서 직접 봤더니 더 복잡하게 기분이 안 좋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요즘 배우는 무술이 중국 무술 아니던가? 중국인은 싫어하는데 중국무술은 좋아하다 못해 매일매일 몸으로 수련한다? 예전에 했던 십팔기 역시 중국 무술의 영향권 안에 있다고 볼 수 있는데… 무술은 국경이 없는 순수한 객관적 실체라고 자위해 보지만 찝찝한 마음이 가시지 않는다.
그러고보면 일제를 겪었던 사람들에게 일본 무술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복잡한 생각을 하게 만들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순수하게 무술로서 애정을 가지고 수련했던 사람도 있었겠지만, 어떻게든 벗어나고 덮어버리고 싶었던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현재의 역사왜곡의 길을 가게 하는데 일조했을 것이고.
중국무술의 도입도 그리 녹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초기 화교에게서 중국무술을 배운 사람들이 빼놓지 않고 하는 얘기가 중국인들의 배타성.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 기를 써가며 배웠을 것이다. 기술을 다 가르쳐주었는지도 확인할 수 없고. 거기서 어쩌면 선배(?)들은 중국 무술을 우리가 완전히 가져 와서 후배들을 고생시키지 말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을 지도 모른다. 중국 사람들을 중국 무술로 이기고 싶었을 것이다.
무예제보의 기사에는 기술을 잘 가르쳐 주지 않는 중국인이 등장한다. 물론 무술을 짧은 시간에 전달한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긴 하다. 그럼에도 조선인들은 사활을 걸고 전투 기술을 배운다. 그 결과가 무예도보통지에 남아 있는 중국에 근원을 둔 무술들. 그때는 중국 무술이라고 꺼려하는 마음은 없었을 것이다. 왜구를 상대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수입한 기술들인데.
조선 사람들은 거기서 한술 더 떠 적국 일본 무술을 배워 온다. 한반도에서 전쟁을 벌인 일본은 한일합방을 했던 때보다 더 이가 갈리도록 밉지 않았을까? 그런데 그 왜구의 무술을 수련 했을까? 최소한 그걸 배워온 사람과 전략을 연구해야 하는 사람들은 연습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