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 6월 27일부터 7월 1일까지 북경에서 발행하던 「實報」에 5회로 나뉘어 실린 왕향재의 인터뷰. 옮긴이 유호상.
문: 세인들 중 선생님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분들도 많으나 일반적으로는 크게 비난을 하는 것 같습니다.
[없음]
답: 저를 알아주는 사람은 이치에 밝은 사람입니다. 저를 잘못되었다고 하는 사람은 심야에 조용히 앉아 생각을 해보면 조소와 매도가 그로부터 나온 것이기는 하나 저는 또한 따지고 싶지 않습니다. 만일 권학의 진수가 다시 빛을 볼 수만 있다면 개인의 명예가 훼손된다고 할지라도 어찌 감히 안타까워 하겠습니까?
答:知我者明理之士也,罪我者應於夜深人靜獨坐觀心,總之笑由他,餘亦不辨,倘拳學真髓複見光明,個人之毀譽何敢異哉?
문: 선생님의 학문과 도덕은 세상이 모두 알고 있는데, 도를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함축(생각이나 감정을 함부로 드러내지 않는 것)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問:君之學問道德,世所敢異哉? [다름]
답: 이것을 말씀하시니 매우 부끄럽습니다. 함축이라는 말은 이미 사람들에 의해 사회적인 용어가 되었습니다만 무릇 함축이라는 것은 진실로 학술과 도덕 수양의 기초입니다. 환언하면, 안은 실하되 밖은 허하고 혹은 밖은 견고하되 안은 영활하다는 것이니 바로 노자의 ‘항상 무(無)로써 그 묘함을 보고, 항상 유(有)로써 그 광대함을 본다.’는 이치와 같습니다.
答:所言是矣,殊堪羞愧,惟含蓄二字已為國人之社會性,夫含蓄者誠學術道德修養之基礎,換言之曰:即內實而外虛,或外堅而內靈,正如老氏常無觀其妙,常有觀其竅一理也。
그러나 모르는 사이에 일반인에게 이용되어 이미 세상을 속이는 자들의 호신부가 되었고 사회의 거짓됨도 또한 이러한 사람들에 의해 조성되었습니다. 외부와의 교류가 있은지 근 40년간 매양 느끼기에 사회에서 마술의 기술만은 조금도 대충하는 것을 허용하지 아니하고 희극 또한 문외한이 맡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然不知又為一般人所利用,已成為混事誤人者之護身符,社會之偽亦為此輩所造成。自外涉交遊幾近四十年,每感社會中僅有“戲法”之一術不許絲毫將就,戲劇亦不許門外漢任之,
다만 그 사이에 잘 모르는 약간의 변화는 있었겠지만요. 이른바 사람을 대하여 함축한다는 것은 상대를 보아 베풀어야 하는 것으로서 지나친 사양을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학문과 도덕이라는 말은 감히 제가 감당할 수 없으나 도덕을 연구하는 것은 뛰어난 사람을 따르고자 해서입니다.
但其間之伸縮應有別論餘者不識。至所謂對人含蓄,以為應視對方而施,似不應無理之客氣,如先賢之敬事而信,節用愛人深所樂從,若善交久敬之篇不顧聞也。學問道德則不敢當,研究道德顧附其驥尾矣。[해석이 빠졌음]
이른바 도라는 것은 바로 혼원이니 종횡으로 뒤섞어 보아도 다르지 않은 참된 이치입니다. 또 이치에 합하는가의 여부는 이치에 합하는 것은 도이고, 이치에 합하지 않는 것은 도가 아닙니다. 도는 기이한 것이 아니니, 세상의 속된 문인들이 걸핏하면 경전과 전고를 끌어대는 신기한 것은 도가 아닙니다.
所謂道者乃混元,錯綜不二之真理也,亦即合理與否,合理即為道,不合理非道也。非玄奇之事,亦非世之俗酸文人動輒引經據典故事神奇之為道也。
더욱이 성정이 괴벽하고 미친 척하고 불노(佛老)의 학을 거짓되게 하면서 이상한 모습을 구하고 꿈에 볼 수 있다는 대도의 문이라는 것도 아닙니다. 사회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므로 나머지는 말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尤非性情怪癖,假作瘋狂偽佛老之學以求貌異者,所能夢見大道之門牆也。如對社會認識不足,只好不談其他。
문: 앞에서 말씀하시기를 희극에는 아직도 적지 않은 근본을 가진 부분이 있어서 일반적인 권학과 비교하면 수준이 높다고 하셨는데 이 말씀은 어떤 근거로 하신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이 비평은 아무래도 좀 잘못된 것 같습니다.
問:前云戲劇中尚有不少有本之處,較一般拳學高一頭地,但不知君有何本出此言,愚以為此點批評未免失當。
답: 희극은 본래 교육의 부족함을 보충하는 것이고 무공은 모두 권도에 근본하여 나온 것입니다. 권에는 원래 기발(起拔)이라는 단련이 있는데 시력 공부 중의 하나입니다. 무릇 기발은 정수리와 양 발 중심의 추뉴력(樞紐力)을 구하는 것으로 신체가 균정하고 방대하여 우주와 일체가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발(起拔)의 단련이라고 이름한 것인데 희극에서는 기패(起覇:중국어로는 발음이 모두 qi ba로서 같다)라고 잘못 이름을 붙였습니다.
答:戲劇原為補助教育之不足,武功都本拳道而來。拳中原有“起拔”鍛煉,為試力功夫之一。夫“起拔”者為求頭頂兩足重心之樞紐力,使身體均整放大,與宇宙合為一體,故名“起拔”之鍛煉,戲劇誤名“起霸”,
그러나 그 자세와 이론의 의미를 살펴보면 비록 꼭 들어맞지는 않더라도 별 차이가 없으므로 희극에도 근본이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희극에서 아름다움만을 구하거나 사람들이 좋아하는 여러 자세들은 모두 위조된 것입니다. 지금 권법가들의 모든 자세는 한 자세도 그 균형을 얻은 것을 볼 수가 없고 오래되고 잘 한다는 사람들은 오히려 거짓되고 유치한 동작을 흉내내는 데다가 또 불가능한 것도 있으니 이러고서야 어찌 무도의 심오함을 엿보겠습니까?
然觀其姿態與理論之取意,雖不中亦不遠,所以知其有本,至求美觀博人愛悅之種種姿勢,皆偽造也,今之拳家所有姿勢未見一式而能得其均衡者,且多老馬少駒,反效偽幼,尚有不可能者矣,更何能窺見武道深邃哉?
문: 근래에 말씀을 듣고자 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을 것 같은데요, 선생님의 이에 대해 어떻게 느끼시는 지요?
問:近請道者料不乏人,不知先生感想如何?
답: 근래에 각 계에서 가르침을 받고자 하는 자들이 비록 많지만 모두 기이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어서 논하는 바가 권학과는 크게 상관이 없습니다. 그리고 무술을 한다고 하는 사람들도 모두 제가 바라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答:日來承各界見教者雖不少,然都是好奇之士,所論於拳學多不相干,至同道來訪者而都不是餘之所希望者。
문: 선생께서 바라시는 것은 어떠한 것입니까?
問:先生所希望如何?
답: 저는 비록 재능이 뛰어나지는 못하지만 방문자가 되도록 어려운 질문을 하고 권학이 도대체 어떻게 해야 이치에 합하는가, 인생과의 중요 관계 및 무도의 진정한 정신은 어디에 있는가 등을 연구하는 것을 바랍니다.
答:餘雖不才,甚願訪者儘量問難,研討拳學究竟如何合理與人生之重要關係及注意武道之真正精神之所在,
기격은 비록 말단의 기예이나 결과적으로는 이를 말미암지 않고서는 증명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또한 여러분이 비교 산수를 하기를 바랍니다. 근래에 자질구레한 일들이 많아서 내빈들을 일일이 접견하지 못하여 부끄럽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후에는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오후 1시에서 6시로 접견시간을 일단 정하기로 하였습니다.
技擊雖系末技訊事,然結果非由此不足以為證,故亦願作友誼的比較身手。日來瑣事較繁故來賓未能一一親自接見,餘有愧,故擬今後在星期三、五兩日下午一時至六時亦為接待時間。
문: 선생님의 이러한 행동을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요?
問:先生此學,同仁對之如何?
답: 저는 이미 조소와 비난을 돌아보지 않고 신기한 것을 만들지 않으며 권학의 진정한 의미를 구하고 영원히 이타주의를 지향하고 가르침을 주거나 받으러 오는 사람이 없는 것을 근심하지 않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걱정이 되는 것은 명가의 고수들이 기꺼이 와서 토론을 하지 않아 권학을 넓히는 것을 바라기가 어려울 것 같아 두렵습니다.
答:餘已抱定不顧笑不作神奇的倡導,以究拳學之真正要義,永持利他主義,不患無人不來賜教或就教者。所患者,名家高手不肯前來觀摩研討,恐難博拳學成功之希望矣。
결론적으로 단지 바라는 것은 권학의 진전이고 사회 무도의 목표를 개선하고 쌓여 온 관습을 일신하는 것이니 기타의 것은 따질 것이 못됩니다.
總之但願拳學之進展,改善社會武道之目標,一洗積習,則其他非所計也。
문: 지난 번 신문에 담화를 발표하시어 한 때 파란을 일으키신 이래로 방문자들이 적지 않았을 텐데 그 중에는 무술가도 있었습니까?
問:自前次報紙發表談話後,轟動一時,度必不乏來訪者,其中有無同道?
답: 사회의 따돌림을 받지 않아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들도 많고 방문하는 사람들도 배움에 나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무술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단지 여지걸(廬志傑), 소택빈(邵澤邠) 두 사람만이 추수로 청경(廳勁)을 하였을 뿐입니다. 기타 다른 사람은 오지 않았고 더욱이 실지의 토론을 하고자 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答:承社會之不棄,相顧者確不乏人,而來訪者多系就學之士,同道中僅豐台廬志傑,邵澤分二君欲作推手,內行所謂“聽聽勁”而已。餘無其他,更無一人肯作實地之研討。
추수라고 하는 것도 단지 권도의 일부분으로서 제가 환영하는 것도 아닙니다. 북경의 전문가들 중에는 가르침을 받고자 온 사람은 한 명도 없었으니 참으로 뜻밖입니다. 여러분이 가르침에 이렇게 인색할 줄은 몰랐습니다. 또 제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무덕으로 겸양을 우선시 합니다. 그래서 제한을 두어 연장자에게 양보하고 겸손한 자에게 양보하고 기격이 약한 자에게 양보합니다.
蓋推手一法,僅拳道之一局部,非餘所歡迎者也。至於北京之名手專家,並無一人肯來見教,實出餘意料之外,未悉我同仁何以吝教是也。抑余從來所重者,為武德,故以禮讓為先,然亦有限制,即年老者讓,謙和者讓,技弱者讓,
만일 저의 말이 거짓이라고 여긴다면 일찍이 방문했던 자들에게 물어본다면 알게 될 것입니다.
若以餘言為欺,請詢曾經來訪者便知。
예를 들어 여지걸이 처음 찾아 왔을 때 대략 추수로 기격을 겨루었을 뿐이어서 마음으로 복종하지 않다가 계속 여러 번 찾아와 보고는 비로소 차이가 현저함을 알고는 지금은 완전히 변하여 충실한 제자가 되었습니다.
如廬君初來訪時,略作推手以為技僅如斯,故不肯降心服氣,繼而屢次駕臨,始知相差甚遠,今則一變而為忠實信徒矣。
문: 무술 선배들 중에서 선생께서 마음에 품고 계신 분은 몇 분이나 있으신지요?
問:武術先輩,先生所服膺者有幾人?
답: 살펴보건대, 권술의 선배들 중에서 근 100여 년 간에 동해천, 차의재, 곽운심 선생들 이외에 나머지는 모두 곁가지일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땅이 넓고 사람도 많으므로 그 중에 제가 아직 모르는 사람들도 많으므로 감히 함부로 논할 수는 없습니다.
答:查拳術先輩近百年來,舍董海川,車毅齋,郭雲深諸師尊外,餘皆旁技未節而已,但我國地廣人眾,道中人余未結識者尚多,不敢妄加評論。
문: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양노선이라는 사람은 그 배움이 어떠합니까?
問:世人常云有楊露蟬者,其學如何?
답: 양노선 선생 또한 권학의 선배로서 공부가 대단하고 현재 그를 배우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다만 제가 여러 방면의 관찰에 근거해서 논해보건대, 양노선 선생은 권도의 일부분만을 얻었을 뿐이며 명 나라 때 왕종악 선생 또한 완전히 통달한 사람은 아닙니다.
答:露蟬先生亦為拳學先輩,工太極,今多學之。餘據各方面觀察而論,露翁僅得此道之一部分,即明王宗岳先生亦非通家。
왕종악 선생은 다만 악무목(악비)의 쌍추수의 일부분만을 얻어 삼권을 13식으로 바꾼 것입니다. 태극권이라고 이름한 것은 장삼봉이 전한 것이라고는 하나 실제로 고증할 방법은 없으며 또한 세인들의 견강부회일 따름입니다.
不過宗岳先生得岳武穆雙推手之局部,以三拳而變十三式,至於命名太極,以為張三豐所傳實無從考證,抑世人之一種附會耳。
또 태극권이 140, 150식과 같이 많아진 것은 더욱 그 유래를 알 수가 없습니다. 태극권의 이론은 신체상에서는 겨우 폐단을 만들어 내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정신상에서는 오히려 무한한 손실을 입게 되니 진실한 배움과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如百四、五十式之多則更不知其所以由來。就該拳之作法論,於肢體上僅僅不生流弊,而精神上卻受無限損失,距實作之學相尚遠,不足道也。
문: 신문에 여러 차례 권학의 이론을 발표하셨는데 다른 무술가들은 그에 대해 어떤 의견을 보이고 있는 지 혹시 들어보신 적이 있는지요?
問:報端屢次發表拳論,同道中對之有何表示,曾有所聞否?
답: 무술을 하는 사람들 중에서 명철한 사람들은 저의 권학 이론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보수적이고 시비를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단지 듣기만 할 뿐이며 설사 안다고 하더라도 쉽게 행동에 옮기지 못합니다. 하물며 전혀 시비를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야 더 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答:同道中明哲之士無不接受,至其甘抱殘守缺及是非莫辨者,只好聽之而已。即使能知都不易行,況根本是非難明者乎?
일반적으로 권법가들은 신체를 단련한다는 것으로 구호를 삼으면서도 기격이라는 두 글자에 대해서는 일언절구 말이 없는데 이 점에 대해서는 사람들도 점점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투로에 대해서는 여전히 권학의 원칙이라고 여기고 있는데 이는 실로 지극히 잘못된 것입니다. 제가 가장 주의하는 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然一般拳家既以鍛煉身體為口號,技擊二字絕口不談,就此點看來,亦可知於技擊之道, [다름]
기격의 방법은 투로와 비교하면 분량이 경미한 것이 대부분입니다. 무릇 양생의 도라고 하는 것은 신(神)을 모아 성(性)을 기르고, 사고가 허령함과 일체를 이루는데 달려 있으니 이른바 심심성명의 배움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저런 초식으로 앞 뒤로 뛰어다니기만 하다가는 꿈에도 양생의 문을 보기는 어렵습니다.
與之相較,則份量輕微多矣。夫養生之道,是在凝神養性,思與虛靈成一體,所謂身心性命之學也。如這麼一招,那麼一式,前竄後跳,實難夢見養生之門。 [다름]
양생은 실제로는 간단한 것입니다. 사람의 본성은 천연의 구속되지 않은 자유로운 움직임을 좋아하게 되어 있으며 모든 능력 또한 이를 인하여 발휘됩니다.
蓋養生實為簡易,人之本性是愛天然無拘自由之運動,一切本能亦俱因是而發。
예를 들어 매일 아침 신선한 공기 중에 일체의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단지 전신의 관절을 구부린 듯이 다 펴지 말고 생각을 하늘에 두고 임의로 천천히 움직이면 한 편으로는 내부의 기혈의 흐름을 느낄 수가 있고 한 편으로는 신체 밖의 허령한 쟁력을 체득할 수가 있으니 이른바 신(神)이 수영을 하고 있는 듯하다는 것이 이것입니다.
如每晨於新鮮空氣中,不用一切方法,僅使渾身關節似曲非直,著想天空,任意慢慢運用,一面體察內部氣血之流行,一面體會身外虛靈之爭力,所謂神似游泳者是也。
그리고 정신은 자연스러워서 구속을 받지 않아 대자연의 호응을 점차 인식하게 됩니다. 이것을 오래 연습하면 본래의 능력이 발휘되고 신령함이 드러나서 기격의 기초가 자연히 갖추어 지게 될 것입니다. 만일 항상 기계적인 운동에 구속되거나 곤봉이나 창을 휘두르면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이것이 무술의 영예로움이 된다는 것만 알았지 제대로 아는 사람이 한 번 보면 열흘의 노력이면 이를 수 있다는 것은 알지 못하니 참으로 지극히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러나 끝까지 그것을 깨닫지는 못할 것입니다.
而精神體質舒適自然,非但不受限制,而大自然之呼應也漸有認識,久之本能發而靈光見,技擊之基礎不期自備矣。如總拘泥機械之運動,弄杖舞槍求美觀,以為能武之榮耀,殊不知識者一見,可作十日嘔,誠冤哉極矣,且終身不能領悟也。
문: 선생님의 뜻은 진리를 연구하고 무술을 발양하는데 있는데도 방문자가 이렇게 적은 것은 이 이유가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問:先生意在研究真理,發揚武術,何以訪者如此之少,其故安在?
답: 이 일은 해답을 찾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제 추측으로는 우리 나라의 무술계에서 훌륭한 분들도 많기는 하지만 모자란 사람이 더욱 많아서 어떤 무술을 익혀 몇 년간 고된 훈련을 하고 나면 깊은 경지에 이르렀다고 여기고 어떤 파의 전인이라고 자칭하고 이것을 등에 업고 사회적으로 교류를 하고 생활의 문제를 해결합니다.
答:此事甚難索解,據敝人揣想,吾國武術界中,賢者固多而不肖者尤眾,凡習某一派者,苦練多年,自以為造詣獨深堪稱某派傳人,挾此足可以與社會往來,且可得以解決生活問題,
그러므로 그로 하여금 배운 것을 다 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배우라고 한다면 상황이 매우 곤란할 뿐 아니라 생활 문제도 영향을 받게 되고 개인의 전도(前途)와 이해(利害)에도 관계가 되겠지요. 이렇게 커다란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에 방문자가 지극히 적은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一量使之盡棄其所學從頭學起,情實難堪,而生活問題恐亦受其影響,關係個人前途利害,既如此之大,亦無怪訪者之稀少也。
가장 불행한 자들은 결국 아무것도 모르고 그들에게 배우는 사람들입니다. 감히 장단을 논하지도 못하면서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입에서 나오는 대로 함부로 지껄여 스스로 그 단점을 가리면 자세히 살피지도 않고 그 잘못된 것을 받아 들이는 자들이 실제로 많으니 이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이러한 장애물이 제거되지 않으면 우리 나라의 무술은 절대로 장족의 발전을 하기는 어렵습니다.
所最不幸者竟有一般無識之徒,既不敢較長論短,乃妄造蜚語信口雌黃,以自掩其短,社會人士不加細察,受其愚蒙者實在不少,是為可惜耳。此層障礙不去,吾國武術絕難望有長足進步。
문: 선생께서는 무술의 향상을 위하여 결심을 하시고 끈기 있게 지속하고 계시므로 무술이 큰 어려움 없이 정진할 날이 있으리라 봅니다.
問:先生為武術先進,既抱有決心,更望持以毅力,武術自不難有精進之日。
답: 이 말씀은 매우 감동적이군요. 저는 스스로 저 개인의 최대의 노력을 다하며 성패와 명예를 따지지 않습니다. 유일한 목적은 어떻게 권학을 진보 시키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제가 여러분에게 감히 드리고 싶은 말씀은 기격은 본시 말기(末技)이기는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기격의 고하로써 권술의 정평을 삼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答:此言甚可感,餘自當盡個人最大之努力,成敗毀譽,不敢計較,而唯一目的,即在如何可以使拳學得以進步,於此敬告同仁,技擊本系末技,然世人多以技擊之高下,為拳術之定評,
그러므로 두 종류의 연구 방법이 있을 수 있습니다. 만일 동작 하나하나가 대체 어떠해야 적당한 것인지를 연구하고자 원하는 사람은 제가 무조건 환영합니다. 그리고 기격이나 추수를 해보고자 한다면 역시 안될 것이 없습니다. 이 범위는 굉장히 넓으므로 방문자들이 혹 많더라도 진퇴유곡에 빠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故擬有二種研究方法,如願研究一舉一動究竟如何為適當,則餘無任歡迎,若願作技擊及推手,亦無不可,以此範圍寬廣,訪者或可增多,不致進退維谷矣,
만일 방문자가 약간의 장점만 가지고 있다면 저는 반드시 힘껏 그를 위하여 설명을 해 주겠지만 만일 전혀 취할 것이 없다면 저는 입을 다물고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말을 해도 깨닫도록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果來者如有微長餘定極力為之宣揚解說,倘無可取餘決緘口不談,蓋談亦不能使之領悟也,
더 바라는 것은 방문자들이 최대한 어려운 것을 질문하여 며칠이고 서로 연구하여 권학의 진보를 도모하는 것이니 저와 여러분은 모두 권학을 발전시켜야 할 책임을 지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결심을 하였으므로 만일 기술과 품덕이 모두 뛰어난 고명한 분이 계시다면 저는 미력하나마 그를 도울 것입니다.
甚希望來友儘量問難,以期互相切磋,謀拳學之進步,凡我同道,皆負有光大拳學之責,萬不可以個人之關係,誤此重大前程,果于大體有益,個人縱受任何犧牲,[다름]
또 바라고 싶은 것은 여러분이 보잘 것 없는 재질이라서 버림을 받을 것이라고 여기지 마시고 적극적으로 가르침을 청하시어 서로 노력하자는 것입니다. 만일 권학이 이를 말미암아 진보한다면 어찌 개인의 행복이겠습니까? 천하 후세가 그 혜택을 받는 것이 많을 것입니다.
亦應舍小以成大,敝人抱此決心,倘拳學藉此而精進,豈個人之幸,而天下後世,得其賜多矣。[다름]
기자는 왕 선생님과 여기까지 이야기를 하였는데 시간이 이미 늦어져서 이에 서로 정중히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記者與王君傾談至此,為時已晏,乃互道珍重而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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