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 6월 27일부터 7월 1일까지 북경에서 발행하던 「實報」에 5회로 나뉘어 실린 왕향재의 인터뷰. 옮긴이 유호상.
문: 권술의 문파는 매우 많고 이론도 다른데 친구들 중에도 배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중에는 책을 보고서 연습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모두가 효과를 내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잘 모르겠습니다만 어떤 책을 선택해야 하는지요?
問:拳術的門派太繁,理論不一,知友中習者尚多,亦有照書練習者,然皆不生效,未知何書可采?
답: 권학에는 이른바 무슨 일가(一家)라는 것이 없고 권의 이치도 동서고금의 구별이 없는 것입니다. 다만 옳은지 잘못되었는지, 마땅한지 아닌지를 살필 뿐인 것입니다. 세상에서 보편적으로 각 문파들은 대부분 투로와 수법으로 권을 익히는 길을 삼고 있는데 이러한 것들은 모두 후인들의 위조이지 원래의 권학 정신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答:拳學無所謂那一家,拳理亦無中外新舊之別,只查其是與不是,和當與不當可耳。社會普遍各家,大都以拳套手法為習拳途徑,要知此種作法都是後人的偽造,不是原來拳學精神,
비록 조금은 우연히 지엽적인 역학(力學)과 단편적인 기술을 알고 말한 것도 있으나 수단과 껍데기 수준을 떠나지 못하여 결국에는 쓸 데가 없습니다. 저술이라는 것도 이러한 범주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이 방법은 비록 학습은 매우 쉬우나 이렇게 맹종하는 것이 간단한 것은 아닙니다. 종종 이름있는 선생의 지도를 받고 수 십년이 지나도 시비를 분별하지 못하는 자도 있으니 어찌 판각된 문장이 할 수 있는 것이겠는가?
雖稍有偶知講些枝節的力學,及技術的片面,然而總未離開方法和套子,所以終是無用。至於著作者,亦不出此範圍。此道雖是學習很易,但亦非如此盲從之簡單,往往經名師之口傳心授,尚有數十年而是非莫辨者,豈刻板文章所能濟事。
모든 학문은 먼저 이치를 밝히고 기초에서 공부를 체득하는 것으로부터 점점 시작하고 다시 삼가 생각하고 밝게 분별하고 여러 방면의 실험의 증명을 더한 후에야 그 기술에 나아가 연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凡一件學問應先明理由基礎體認功夫漸漸作起,再加以慎思明辨及多方實驗的證明,然後方可進研其技。
또 단련 시에 거울을 보고 조작하는 것을 삼가야 하니 형태를 비슷하게 하는 데에만 빠지고 정신이 참되지 못할까 두려워해서 입니다. 하물며 책에 비추어 연습하는 자에 있어서 이겠습니까! 이것은 참으로 장님이 눈이 먼 말을 탄 것과 같은 것입니다.
且鍛煉時有忌對鏡操作之戒,恐流於形似而神不真,況照書本練習者乎?此真盲人騎瞎馬也。
다만 책을 본다는 것은 각 항의 이론의 결정을 널리 채집한다는 것이지 그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 것을 주의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의 30년의 교학적 관찰에 근거해 보건대, 이 학문은 지극히 어렵기도 하고 지극히 쉽기도 하여 만일 천재적인 학생을 만나면 100일의 공을 채우지 않고서도 크게 이루어짐을 볼 수가 있으나 이는 백 명 중에 하나, 둘도 있지 않고, 재질이 총명한 자는 대부분 성실성이 부족하고 거짓되고 속이는 것이 많습니다. 그리하여 중도에서 대부분 포기해 버리니 안타까운 일입니다.
不過看書是博采各項理論之結晶,非注意其姿態如何耳。餘據卅年教學的觀察,這件學問是極難亦極易,倘遇天才的學生,不滿百日之工,則有成通家大器之望,然於百中未有一二,大凡天資聰敏者,多功能欠忠厚,且虛偽而欺詐。故中道多為業師棄之,此亦可惜乎!
세상에서 일반적으로 배운다는 사람들은 그 어려움이 참으로 가련함의 극치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직접 보지는 않고 남의 말만을 믿으니 어찌 이름과 실제라는 두 글자가 근본적으로 동일하게 다룰 수 없는 것임을 알겠습니까? 또 세상의 권사들은 쇠털처럼 많으나 요령을 얻은 자는 기린의 뿔처럼 드물고 귀한 것입니다.
如社會之一般學者,其困難誠可憐之至矣。多人總是以耳人目,豈知名實二字根本不能並論,且世之拳師多若牛毛,得要者如麟角,
무릇 그 요령을 얻은 자들은 개성이 뚜렷하여 이름에 유혹당하지 아니하고 이익에 불려 다니지 아니하므로 당연히 거짓된 사람들과는 어울리려 하지 않으니 심하구나 선생을 얻기가 어려움이여! 설사 훌륭한 선생을 만났다 하더라도 어떻게 알아볼 것이며 혹 알아본다고 하더라도 기꺼이 청하는 곳으로 가지 않을 수도 있고 또 청함에 응한다고 하더라도 좋은 교학의 방법을 가지고 있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凡得其要者,個性多異于常人,不為名誘不為利招,當不願與偽君子為伍矣!甚矣哉,得師之難也。即遇明師何以能辨,則未必肯如所請,如肯應請亦未必有教學的良法,
또 법을 얻었다고 하더라도 배우는 자가 깨닫지 못할 수도 있으니 여러 가지 어려움은 베테랑이 아니면 또한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지금은 이전과 비교하면 배우기가 쉬운데, 과학이 발달한 시대를 만나서 권학의 원리를 이해하는 데 대해서도 도움이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권학을 포괄할 수는 없으나 과학적인 층차와 국부적인 분석을 구학(求學)의 계단으로 삼는 것이 최상의 방법입니다.
假使得法而學者亦必能領略,種種困難,非過來人不能知也。不過現在比較以前則易於學習者,因值科學倡明的時代,對理解拳學原理當得幫助不少,然尚不能以此範圍拳學,若以科學這層次及局部剖析之解釋,則當推為求學之階梯不二法門。
저의 권학 중에도 많은 원리가 설명할 수 없는 것도 있으나 몇 년 뒤에는 혹 증명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무릇 학술은 본래 끝이 없는 경지이고 영원히 이름할 수 없는 것이며 또 알 수도 없는 것입니다. 총괄해 보면, 여기에서 논하고자 하는 것은 권학의 정신에 과학적인 방법을 더하면 해결하는 데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惟我拳學中尚有許多原理,而不可以解者,但若干年後或可得證明。夫學術本無止境,或永無以名之,亦未可知。總之,在此時而論,應以拳學之精神加以科學的方法,則當不難解決矣。
문: 누차 독자들이 선생님의 이론에 대해서 부정하지는 않지만 듣고 배울 때 투로가 없어서 쉽지 않다고 느끼고 처음 배우는 사람들은 더욱 그 정도가 심하다고 들었습니다.
問:屢聞讀者多對先生之理論都不否認,惟聞學時無拳套感覺不易,初學者尤甚!
답: 인체의 기능은 아무리 총명한 사람이라도 일생을 통해 모두 단련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정화를 버리고 찌꺼기를 익힌다는 이치가 있습니다. 또 투로는 배울수록 멀어지기가 부녀자들의 전족과도 같고 공부가 깊어질수록 더욱 어려워져서 느슨해져 풀어져 버리도록 만들게 됩니다.
答:人身百骸諸般功能,任何聰明者一生練之不盡,那有舍精華而習糟粕之理,且拳套方法愈學愈遠如婦女纏足無異,功夫愈深愈不易使其舒放,
그러므로 처음에 배우는 사람들은 진보가 오히려 빨라서 오래 연습한 사람들을 이기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이러한 논의는 많은 사람들을 비교하여 증명된 것입니다. 후세의 이른바 무슨 식이 무슨 힘을 낸다는 말과 무슨 법이 무슨 권을 이길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크게 사람을 속이는 것입니다. 아마도 이것을 말한 사람들은 권학에 대해서 인식이 아직도 먼 것 같습니다.
故初學者進步反速而勝老手者多矣。此論有多人作比擬之鐵證。後世之所謂某式生某力之說及某法可以克某拳之功,此真大言欺人,恐云者,對於拳學認識尚遠。
문: 선생께서 말씀하신 것이 지극히 옳습니다. 기격의 망연함이 이와 같으니 모두에게 간편한 요결을 보여주시어 쉽게 효과가 나도록 하실 수 있는지요?
問:先生所言極是,技擊茫然若是,能否示大家一簡便要訣,易使有效乎?
답: 앞에서 이미 양생의 대의를 약술하였으니 그렇게 할 수 있으면 양생의 도를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높고 깊은 기격을 배우고자 하면 또한 이 과정을 말미암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극히 어리석은 사람이거나 커다란 지혜를 가진 사람이 아니면 기꺼이 이렇게는 하지 않으려 할 것입니다. 만일 천재라면 모든 법칙을 익혀야 할 것입니다.
答:前者已略述養生大意,能肯如此,則養生之道思過半矣,如欲學習高深技擊則亦由此經過,但非極愚之士及稱之大智慧者不肯如此。若天才而性近者,則應習一切法則。
기격의 법칙도 참장과 시력으로부터 배워야 하니 앞에서 이미 그 대강을 말하였습니다. 시력의 법은 매우 많은데 더구나 각 항의 힘이 몸에 얻어진 후에도 기격의 도가 이미 끝났다고 생각하지 말고 이는 비로소 기격의 가능성을 배우게 된 것이니, ‘이완에서 긴장, 긴장에서 이완을 하되 정도를 넘지 아니하고, 허에서 실로 실에서 허로 하되 중(中)을 얻는다’라는 컨트롤을 장악하는 것이 또한 한가지 문제가 됩니다.
蓋技擊之法則亦需由站樁試力學起,前已述其大概。夫試力之法太繁,況各項力量身得之後,莫以為技擊之道已畢,乃始有學技擊之可能性,如得“松緊緊松勿過正,虛實實虛得中平”的支配,則又一問題也。
총괄해서 말하면, 선생을 얻은 후에 조예의 깊음과 얕음은 개인의 자질과 공력이 어떠한가에 달려있는 것이니 만일 출수를 하여 시기가 이미 발하였는지 아직 발하지 아니하였는지의 요령을 얻을 수 있으려면 실제의 동작을 오래 해보아 익숙해진 사람이 아니면 얻기가 어렵습니다.
總之,得師之後,而造詣深淺,實在個人天資功力如何,若能出手而得已發未發時機之扼要,則非久經實作之慣手難能得也。
문: 권법가들이 말하는 것을 듣건대, 힘을 사용하지 않고서 어떻게 힘이 늘도록 할 수 있는 것입니까? 고금의 명수 누구를 막론하고 단전의 기가 충실해야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말하지 않았던가요?
問:聞拳家云:不用力如何使力之增長?勿論古今名手總不脫丹田氣之充實方能奏效?
답: 힘을 사용하는 것은 문외한의 논의입니다. 또 일반적으로 그럴 듯해보이는 힘을 쓰지 않는 방법을 가진 자들도 있는데 그 힘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 대체 무슨 뜻인지를 모르겠습니다. 힘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맞으나 의념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틀린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答:用力之說為門外漢之論,而亦有一般似是而非持不用力之方者,而不知其不用力究為何意?要知不用力則可,不用意則不可。
힘을 쓰면 기관이 죽고 인체가 영활하지 못하게 되어 딱딱해져서 상대방에게 틈을 주게 됩니다. 바꾸어 말하면, 저항의 형태를 보면, 저항하려는 의념은 상대방의 타격을 두려워하여 일어나는 것이지만 이렇게 되면 정신은 이미 타격을
받게 된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실제로도 어찌 맞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의념을 단련하지 않고 힘만을 사용하는 것은 권학에서 가장 꺼리는 것입니다.蓋用力則器官死,百骸不靈,板滯呆癡易為人所乘。換言之,即抵抗之變象,蓋抵抗之意,乃畏對方之擊動而起,殊不知精神已接受被擊,安得不為人擊中乎?故用力為拳學之大忌。
단전의 기에 대해 논해보면, 원리와 실제 경험 및 제가 체험한 느낌으로는 이 논의는 타당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배속은 장기가 있는 장소이지 결코 왕성한 기운이 머무는 곳은 아닙니다.
至論丹田氣者,在原理方面,及實地之驗和鄙人體察之感覺,此論似有不妥。腹內乃腸胃肝臟之宿舍,並無盛氣之所,
동력(動力)의 기능은 모두 쟁력과 탄력이 우주력과 접촉하고 호흡을 운용하고 개합을 팽팽하게 하는 작용과 정신이 혼연한 대기를 가상하는 것이니,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기공의 기가 아닙니다. 결국 아랫배로 배를 충실하게 하는 것을 단전의 기라고 여기는 것은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운용 시에는 힘은 반드시 균등하고 생동하는 상태에서 편안하게 힘을 얻어야 비로소 이치에 맞는 것입니다.
至於動力之功能都是爭力、彈力與宇宙力之接觸和運用呼吸鼓蕩開合的作用,及精神假想天空渾然之大氣也,非世人所謂功之氣也。總以下腹充實大肚子即以為丹田氣者,則錯誤極矣。要知運用時,力家均整,尤尚空靈以達舒暢得力方為合理。
지금 배우는 자들이 이 이치를 알지 못하고 수 십년의 공을 낭비하여 도리어 영활한 심신을 기계처럼 단련하고 있으니 어찌 애석하지 않겠습니까!
今之學者不明斯理,費數十年這純工,反將靈活之身心練成機械,豈不惜哉!
문: 선생께서 이렇게 비평하신 것은 옳습니다. 다만 지속되는 결투나 장기적인 도전에서 만일 실수를 하게 되면 어찌해야 합니까?
問:先生如此批評是則是矣,但無異永久之擂臺,長期之挑戰,倘有失足,可當如何?
답: 결투의 일을 제가 어찌 감당하겠습니까? 더구나 감히 도전의 원흉이 되고자 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바라건대 여러분이 모두 이와 같이 제창하고 토론을 한다면 권학의 앞길이 자연히 어렵지 않게 발양광대 할 것이지만, 만일 모두가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결국 스스로를 속이고 남도 속이게 됩니다.
[없음]
또 개인의 승패득실은 감히 따질 것이 아닙니다. 졸렬한 의견으로 고견을 이끌어내는 격으로 온몸이 성한 곳이 없더라도 이 도가 제창된다면 저의 바람은 다할 것입니다.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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