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成拳宗師王薌齋 談拳學要義」 (3/5) 중국권술의 역사

By kabbala

1940년 6월 27일부터 7월 1일까지 북경에서 발행하던 「實報」에 5회로 나뉘어 실린 왕향재의 인터뷰. 옮긴이 유호상.

문: 전번에 신문에 담화를 발표하셨으므로 최근에 방문한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 같은데요, 그 중에 고명한 사람은 없는지요?

問:前次報端發表談話,想近日來訪者必不在少,其中有無高明奇士?

답: 여러분들의 관심과 제창을 입어 저는 매우 위안이 됩니다만, 북경의 사람들 가운데는 찾아와 가르침을 준 사람이 여전히 없습니다. 단지 각지에서 마음을 표시하러 온 사람들은 많습니다. 또 여러 곳에서 와서 토론하거나 저를 무술교사로 초빙하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최근에는 진실로 권학을 연구하려는 사람이 매우 많아서 스스로 와서 청하는 사람도 많고 다른 사람의 소개를 받은 사람도 있습니다.

答:承諸位關心提介,鄙人甚慰,京師方面之同仁仍無一人肯來賜教。惟各地來函表示同情者尚多。並有數處來人商討,願聘任教授,更有一事堪為知已者告,近今京中真研拳學就教者甚多,多系自動請求,經人介紹者亦有之。

무릇 제창의 의미는 바로 이 점에 있으니 결코 남과 다투는데 있지 않으며 더욱이 경쟁을 하는 것은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권학에 대해 상당한 인식을 가지기를 바라며 권학의 제정이 근본적으로 개선되어 승부로서 영욕을 삼지 않기를 바랍니다. 권술 동지들이 맹목적으로 이것 저것 섞어서 마음대로 단련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지 않기를 바라며 더욱이 건강을 지향하는 권학가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돌팔이 무술가로 흘러가 버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蓋提倡之唯一宗旨,即在此點,並非與人有所爭,而更不屑以竟,願使國人對於拳學都有相當認識,亦希望拳學之立法根本改善,莫以勝負為榮辱,願拳術同仁勿以盲參胡練為自是,尤盼同仁都為衛生之拳學家,不願盡流為江湖之把式匠,

그러나 지금 권법을 익히는 자들은 백 명 중에 한 명도 제대로 된 자가 없이 대부분 눈을 들어 보면 전부 잘못되었다는 느낌입니다. 권법에 의지하여 생계를 도모하는 권사들이 제자를 가르치게 된 후에도 남을 따라 배우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면, 정신적으로도 스스로 고민하지 않고 응당 자기보다 뛰어난 사람을 따라 힘써 배워 반드시 시시각각 자신이 가르치는 남의 자제들을 잘못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양심을 가질 수 것입니다.

但今之習拳者,百無一是,大有舉目全非之感,至賴此謀生之拳師,只要不以任教後,複從人學為可恥,而精神中能不自苦,應以優於我者當力從之,須時刻存莫誤人子弟之良心,

그러나 지금의 권사들은 권학의 정신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단지 이에 의지하여 생활만을 도모하니 다만 결코 신비하거나 강폭함을 사람들에게 말하지만 않는다면 크게 잘못되지는 않겠습니다만 이들 중에는 견식이 얕은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일시에 모두 감화시키기는 어려우니 차차 깨달아 스스로 반성하도록 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今之拳師既不知拳學精神之所在,只得以此謀生活,但萬不可以神秘及剛暴語人,則庶不致天淵大謬。不過此中人識見薄弱者太多,一時不易悉數感化,惟希望漸漸使其覺悟,自省而已。

문: 무도는 어느 땐가 일어나 문파가 많아지고 각자가 모두 옳다고 하므로 배우는 사람은 망연하여 무엇을 따라야 할지 모르는 느낌을 가지게 되는데 도대체 어떻게 하는 것이 합당한 것인지요?

問:武道起於何時、門派之多,各言其是而學者終有茫無所從之感,究竟如何為合法?

답: 세계의 모든의 학술은 모두 비교를 거친 후에야 우열을 구분할 수 있으니 그렇지 않으면 각자 자신이 옳다고 하므로 문외한은 분별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권은 단지 승부라는 한가지 만으로 시비의 준칙을 정할 수는 없고 합리적인지의 여부, 삶의 요구에 적합한지의 여부로써 하여야 합니다.

答:世界一切學術都是藉比較而後可以分優劣,否則各云其是,門外人難能辨也。然拳不能就以勝負之一點即為定是非之準則,要以合理與否,與人之需要適合與否,

이른바 합리적이라는 것은 편안하게 힘을 얻어 재미가 있는 경지에 이르지 않은 것은 권이라고 말하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권술의 역사를 아느냐 모르느냐는 깊은 관계는 없으며 다만 학술 방면에서 연구의 가치가 있느냐는 것과 인생의 필요에 적합한지의 여부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所謂合理者,非達到舒適得力而有趣者不足日拳。至拳術的歷史知道與不知道無甚關係,只看學術方面有無研究價值與合乎人生的需要與否。

우리나라의 권학을 말해보자면 비록 오래된 역사를 가졌으나 전국시대에 비로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하였고 점차 전진과 변화를 하다가 당, 송 시대에 이러한 기술이 모여 유파를 이루었고 원, 명, 청초에 가장 성하여 익히는 자들이 많았는데 공력의 조예가 다르고 식견과 지혜가 차이가 나서 그에 따라 파벌이 나누어져 각자가 옳다고 하니 즉 이른바 지금의 각가(各家)라고 하는 것입니다.

不過說到我國拳學,雖說有很悠久的歷史,而戰國時始露頭角,逐漸推進與演變,直到唐宋時始彙成斯技而有流派,元、明、清初為最盛,習者甚多,只因工力造詣之不一,學識智愚之不同,故隨之分家別派各言其是,即所謂今之各家者也。

청나라 강희, 옹정 시대에도 화기가 아직 성행하지 못하므로 이 도(권술)가 나라에 이득이 되지 못할까 두려워하여 이 도를 붕괴시켜 쓰여지지 못하도록 하고자 하여 문을 높이고 무를 경시하였는데 한 방면에서는 비선검객을 제창하여 신비함을 보이고, 다른 방면에서는 투로를 제창하여 서로가 다른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清康雍時代火器尚未盛行,恐此道將于國不利,欲使斯道崩潰永墮而不拔,以倡重文而輕武,一方面提倡飛仙劍客,故示神秘;一方面倡導拳套招法以走歧途,

그리하여, 중용의 대도를 물어서 얻을 수가 없게 되었고 다시 희극과 소설을 이용하여 선전 도구로 삼고 다시 권을 익히는 자로 하여금 사대부들에 의하여 천대를 받도록 하였으니 마침내 오늘과 같이 더욱 수준이 낮아지고 추태가 백가지로 드러나는 날이 있게 된 것입니다. 진실로 안타깝고 애통한 일입니다.

中庸大道無以問得,複利用戲劇和小說為宣傳工具,更以使習此者,為士大夫所不齒,始有而今每況愈下, [해석에 다른 내용이 추가되어 있다.]

다행히 우리 권학의 선배들은 은밀히 전인을 두어 마침내 한 줄기 광선을 남겼습니다. 근 20여 년간 각지에 비록 전문 과목을 설치하여 제창하였으나 제창이 빨라질수록 파산도 더욱 빨라져 영원히 권학의 궤도를 걸을 수 없었습니다.

雖設立專科提倡,而提倡越快破產越速,永不得走上拳學的軌道。[해석에 다른 내용이 추가되어 있다.]

그 실제의 배움이 본래 어렵지 않으나 세상 사람들은 여전히 소설의 해독을 받았고 또 지금의 권사들은 대부분 이것으로 생계를 삼기는 하나 권학에 대해서는 근본적으로 망연했고 설사 깨달은 자가 있더라도 다시 남을 따라 배우는 것을 부끄러워하니 역시 어찌할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其實學本不難,因世人仍是小說荼毒的頭腦,更有今之拳師,大都以此為生,對於拳學根本茫然,即有覺悟再加羞從人學,亦就無可如何。

근 반 년간 여러분 중에서 간혹 나에게 와서 보잘것없는 몸으로 시범을 보인 자들이 있는데 저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분명히 밝지는 않겠습니다. 그 사람도 먹고 살아야 되니깐요. 지금 모두가 자신이 잘못된 것을 알고 있는 자들이 많으나 무엇 때문인지 공개적인 토론을 하기를 꺼리고 더군다나 실력을 비교하여 학술의 증대를 구하려고 하지도 않으므로 마침내 양심이 꼬여 오히려 남의 잘못을 꼬집어 몰래 유언비어나 퍼뜨릴 줄만 알고 겉으로는 모른체 하니 이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近半載以來,同仁常有來我處作零星之身手之試,餘不顧指明其人,以留謀生之道。現在大家亦多知自已錯誤,然為何不肯作公開討論之舉,而更不肯作身手之較,以求學術之增強而竟良心扭轉,反謫他人之非,只知暗地妄造蜚語,而表面卻裝聾作啞,是何理歟?

직업이 없는 자들은 무술에 능하다고 생각되면 신비한 권파를 만들려고 하고, 연극을 하는 융통성 없는 아마추어 배우들은 다만 주의를 끌려고 현란한 동작만을 하니 참으로 같이 상대하기가 어렵습니다. 만일 나의 말이 잘못되었다고 생각된다면 무직업의 권을 연구하는 사람에게 가르침을 주기를 청해도 되겠습니까?

至無職業的以為能武,欲假此以作神秘之拳閥者,如研戲劇欠通之票友只會妄加指摘以炫其能,誠不齒之至。倘以餘言為謬,敢請無職業之研拳者能肯賜教一談乎?

또 바라건대 우정어린 시범을 보이는 것이 인격과 밥 먹는 데에 있어서 모두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만일 직접 왕림하여 가르침을 줄 수 없다면 장소와 시간을 알려주면 내가 시간을 꼭 지켜 가서 뵙고 만일 조금이라도 장점이 있으면 힘을 다하여 그를 위하여 선전을 할 것이고 만일 취할 것이 없더라도 입다물고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문을 닫아 걸고 스스로 제일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참으로 일 푼의 가치도 없는 것입니다.

更希作友誼的小試身手,於人格飯碗,一切都無問題,如不堪屈駕賜教,請示知地點、時間,我當遵時往謁,倘有微長,定當竭力為之宣傳,如無可取,亦絕口不談,若總閉門稱帝,此真不值一文也。

문: 선생님의 논의를 들어보면 국술의 요도를 밝히시어 새로운 국면을 열어 여러분들을 위하여 행복을 도모하고 계신데요, 그러나 태극권을 지적하신 부분은 좀 지나친 곳이 있는 것 같습니다.

問:與聞先生之論,道破國術之要道,別開生面另辟一新途徑為同人謀幸福,但亦有云指謫太極拳仍有過當之處。

답: 저는 도에 대한 인식이 아직은 낮으므로 감히 새로운 국면을 열었다고 말할 수는 없고 다만 선배들의 전통을 준수하여 넓혔을 뿐입니다. 태극문 중에는 저의 친구들이 많습니다만 여전히 유감스러운 점들이 많습니다.

答:鄙人識道尚淺,非敢云別開生面,不過遵前輩傳統推廣而已。在太極門中,余之好友極多,而尚有好多不好意思之處,

또, 태극권은 다른 것과 비교해서 폐단이 적고 이치를 깨달은 자들도 비교적 많기 때문에 오히려 거리낌없이 지적하였던 것이지 그렇지 않다면 또한 일찍이 논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실제적인 비평을 이야기하자면, 제가 염려하는 것은 태극문 중에 아직 권학을 이해하지 못한 자들이 자못 많지 않을까 하는 것이고 서로 알고 지내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더욱 말을 할 수 없습니다.

亦因該拳較之其他流弊少,明理者較多之故,尚不吝指謫,否則亦早不屑論矣。談到實在批評的話,吾恐太極門中,從未認識拳學者頗多,至通家更談不到。

저는 어릴 때 단학인 장삼봉 선생의 이름을 들었고 장성하여 외지로 돌아다닐 때는 각가의 여러분들을 알게 되었는데 태극권만을 익히는 자들이 많았으므로 태극권에 대한 의구심을 가진 것은 이미 오래되었었습니다.

余總角時曾聞有丹士張三豐先生之名,及長外遊,得識各家同仁亦惟習太極者眾,故對該拳懷疑已久,

듣기로 태극권은 장삼봉 선생이 전한 것이라 하여 저는 일찍이 삼봉을 낮게 본 적이 있었으나 후에 삼봉 선생의 전집을 읽고 나서야 비로소 선생이 대도를 꿰뚫은 선진적인 인물이요, 깊은 경지에 들고 널리 요도를 얻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聞該拳為張三豐先生所傳,故餘早有卑視三豐意,後來讀三豐先生全集,始知先生乃為一貫大道之先進,已深入法海,博得要道,

그러나 저는 태극권은 절대로 선생이 전한 것이 아니라고 확신합니다. 기실 긴가 아닌가 하는 것도 조금도 문제될 것이 없으며 설사 삼봉 선생의 후예가 그 요체를 얻었는가 하는 것도 논할 것이 못됩니다. 삼봉 선생의 전인이 누구인지도 알 수 없는 것이고 그가 도가 있었는데도 또 어째서 다른 것을 빌렸는지도 알 수가 없습니다.

可是餘更深信該拳絕非先生之傳。其實是與不是沒有一些關係,就即便是三豐後裔未得其要亦無足論。三豐先生之傳人不知為誰,想當不及三豐有道又何用假借其他,

중요한 것은 한 개인이 전해 받은 것이 진짜인가 가짜인가 하는 것입니다. 하물며 지금 태극권을 익히는 자들은 사람마다 다르고 이론도 일치하지 않아 임의로 위조하고 있음에 있어서 이겠습니까! 일찍이 삼봉 선생이 말씀하기를, ‘자신의 몸을 떠난 것은 도가 아니오, 자신의 몸에 집착하는 일도 잘못된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要在個人得傳之真偽與否。況今習該拳者,各人各樣,理論不一,任意偽造者乎!曾記三豐先生云:離開已身不是道,執著已身事更糟。

태극권이 140, 150식으로 많은데 한 식, 한 법이라도 집착을 받지 않는 것이 있겠습니까? 이러한 자세들을 가져가서 무엇을 하겠습니까? 정신은 단단히 고정시켜 풀어져서는 안되기는 하지만 기실은 신경과 사지의 자유를 방해하고 있습니다. 멀리 삼봉 선생의 고명함이 이와 같음을 생각컨대, 마땅히 전함에 이와 같이 융통성이 없는 태극권이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太極拳百四、五十式之多,有沒有一式一法不被執著?用這些姿勢作什麼?而精神方面牢牢綁定不可解。實為妨害神經肢體之自由,遙想三豐先生高明若是,當不致傳有如此欠通之太極拳。

태극권의 권보의 내용을 논해보면, 단쌍중(單雙重), 불편의(不偏倚) 등의 지극히 좋은 의미들은 다만 권학의 일부분의 초보일 뿐이다. 권보를 논해보면, 태극권의 명수가 가슴에 손을 얹고 자문해 보기를, 일식일법이 모두 권보에서 논하고 있는 것에 합치는지 물어보고 싶습니다. 이미 스스로 최고의 권학이라고 여기면서 어째서 실제로는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까요?

就以該拳譜文字方面論,單雙重不偏不倚種種盡善盡美的意義亦僅不過拳學一部分的初步。就以拳譜論,請問太極名手捫心自問,能否有一式一法,合譜之所論者?既是自以為無上拳學,為什麼實際上不生效果?

또 듣건대 태극권에는 점을 쳐서 기술을 배우는 것도 있다고 하는데 이는 더욱 세상을 황당하게 하는 것입니다. 설사 태극권의 모든 법칙이 다른 것보다 뛰어나고 솜씨 또한 훌륭하다고 하더라도 정신 방면에서 그것을 말하면 역시 잘못된 것이고 기타 의심스러운 부분은 더욱 이만도 못합니다.

更該拳有機壇扶乩而拳技工者,此更荒夫下之唐矣。縱使該拳一切法則優於其他,技能亦高出一般,然在精神方面而言亦是錯誤,無他疑意,況皆不如是矣。

태극권은 다만 사람이 많고 기세가 등등하여 제멋대로 널리 선전을 하고 있으나 기실 이치에 밝은 사람이라면 공격하지 않아도 스스로 자멸할 것이라는 것을 일찍이 알고 있습니다. 저의 말이 혹시라도 잘못되었다면, 바라건대 여러분들이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질문해주시기를 바라며 만일 가르침을 받을 것이 있다면 저는 기꺼이 환영합니다.

太極拳不過人多勢眾,擅廣宣傳,其實明理人早知不攻自破。餘言或有不當、甚願同仁不留絲毫客氣的質問,如有見教,我更當掃徑歡迎也。

문: 선생께서 태극권의 잘못을 비평하신 점은 인정합니다만 친구들 중에는 태극권을 익혀서 건강을 얻은 사람들도 많으니 아마도 선생께서 비평하신 것 중에는 타당하지 않은 것도 있는 것 같습니다.

問:先生批評太極拳之錯誤,自當承認,然友中習拳而得健康亦尚多,恐先生之所批評似有失當。

답: 권학의 가치는 가볍고 미약한 것이 아닙니다. 권학은 바로 인생의 요구라는 것을 알아야 하니 잠시라도 일이관지(一以貫之)의 배움을 떠나서는 안됩니다. 그러므로, 장자가 말하기를, ‘기예라고 하는 것은 도에 나아가는 것이다’라고 한 것입니다. 이는 진실로 문화와 예술의 기초이며, 선학과 철학의 명맥입니다. 만일 다만 이러한 미미한 효과로써 권술을 대표할 수 있다면 권학을 연구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答:拳學之價值,不僅輕鬆而微末。要知拳學乃人之需要,不可須臾離一貫之學也。故莊子說:技也進乎道矣,誠文化藝術之基礎,禪學哲理之命脈,

태극권을 익히는 잘못이 이와 같은 데도 효과를 낼 수 있다면, 더욱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은 만일 운동시간에 태극권의 모든 방법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임의로 체득해 나간다면 얻는 효과가 커서 태극권의 방법대로 연습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라고 저는 깊이 자신합니다.

若僅以此微效而可以代表拳術,則拳學當無考究之必要矣。習拳拘泥若此而能生效,更應知道,若能將習拳時間,不用一切方法,任意慢慢的體會操存,而收效之大,吾敢深信更有勝於此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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